38. 천사들의 환호 (루가 2,8-14)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 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우리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 곳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록 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 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해설] 성서에 나오는 사건들과 표상들은 내적 체험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탄은 우리 개개인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다. 하느님은 이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신적 생명력을 일깨워 주신다. 우리는 그냥 단순한 인간들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점지하신 인간들이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의미를 말과 행동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전례는 과거의 같은 일을 말과 성사로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베들레헴 근처 들판에 주님의 천사 하나가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등장했다. 그의 출현으로 목자들은 겁에 질려 떨었다. 그러나 목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두려움을 가라앉힐 때쯤에는 갑자기 그가 몰고 온 빛이 수천 배로 확산되면서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자 목자들은 감각이 과도하리 만큼 엄청나게 충전되면서 눈부신 내적 광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 천사는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발현이 있을 때마다 전통적으로 그러했듯이 그들에게 표징 하나를 선사했다.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되리라.” 천사의 음성이 별안간 수천 배로 커지며 별들에서, 맑은 밤하늘에서, 들판에서, 땅속에서 무수한 천사들이 출현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노래하고 환호성을 울리며 하느님을 찬양했다!
이처럼 엄청나게 충전된 감각 덕분에 목자들은 실신하다시피 내적 조화와 융화상태로 몰입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약속된 징표를 보기 위해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들은 아기 그리스도를 팔에 안아 보았고 그 같은 접촉을 통해 마음속에 말씀의 현존을 감지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이제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시어 우리와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계신다.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손이 만지고 있고, 하느님의 귀가 듣고 있다. 그분의 인성을 통해 물질세계 전체가 신성해졌다. 이제 하느님은 회오리바람 속에, 지진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계신다. 그분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모든 삼라만상 안에 그리고 삼라만상 각 부분 안에 자리를 잡으신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전례는 이 같은 통찰을 경축하고 예수의 몸이 닿아서 성화된 요르단 강물을 노래한다. 바로 이 접촉의 결과로 지상의 모든 물방울들은 세례성사의 재료가 되었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먹고 마심으로써 음식과 음료를, 특히 빵과 포도주를 거룩한 변모의 매개체로 만드셨다.
어떤 강렬한 감각체험에서 오는 엄청난 충전현상은 하느님을 이야기하되, 비단 하느님을 가리켜 보일 뿐 아니라 신비로운 방법으로 하느님을 포용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육화 덕분으로 인간 각자가 바로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만물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접촉함으로써 변모되었다. 대기는 그분의 숨결로 성스러워졌다. 음식도 그분이 잡수심으로써 성스러워졌다. 모든 감각체험은 이제 저마다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달하고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창조계의 일부가 되고 물질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신다.” 예수께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주고 계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