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40. 용서 받은 죄 많은 여자 (필독!)

2005. 9. 17. 오전 1: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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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용서 받은 죄 많은 여자 (루가 7, 36-50)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식사하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들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병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길래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화로이 가거라.

 

[해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방탕한 아들, 간음한 여자, 잃었던 은전, 잃었던 양 한 마리, 약은 청지기 등과 함께 중요한 비유 중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귀한 손님이 오면 언제고 발 씻을 물을 내놓고 뺨에댜 입을 맞추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이 관례였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런 의례적인 대접조차 바리사이는 예수께 하나도 해드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상 그는 예수를 모욕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예수께서 이런 의례적인 대접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성령의 감도에 따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 여자는 누가 보아도 충격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리사이에게 준 당혹감은 대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성찬식이 한창 거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수영팬티만 입고 뛰어들어 제단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운다고 생각해 보라.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복음의 이 대목에 나오는 줄거리가 바로 이런 경우와 흡사하다. 바리사이는 잔치자리에서 여자의 그런 행동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았고, 따라서 그가 괘씸하게 생각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생각을 훤히 알고 또 어쩌면 의례적인 대접도 전혀 하지 않은 그의 행태를 기억하고 계시던 예수께서는 성경의 감도에 따라 이 사람에게 손을 내미신다.

 

그분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모르는 비망록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사람들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금방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억압적이거나 독선적인 사람들에게 교묘한 방법으로 다가가서 그들 자신을 들여다보고 죄악을 감지하도록 이끄신다. 예수의 주요 관심사는 동기이다.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그 일을 왜 하느냐가 초점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사이의 행실을 여인의 행실과 대비시키고 계신다. 그리고 이 비교의 기준은 주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일상적인 예절이다. 그분은 여인이 눈물로 당신의 발을 씻겨준 데 반해서 바리사이는 발 씻을 물을 내놓는 예의마저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다. 너는 나에게 환영의 입맞춤도 해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결론을 내리신다. 이 여인이 보여주는 사랑으로 볼 때 그녀의 죄는 용서 받았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대는 사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그대는 여전히 죄 속에 묻혀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고 있는 까닭에 용서받는 체험을 맛보지 못한다. 이 용서받는 체험이야말로 우리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표할 수 있게 해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정말 놀랍게도 누구나 손사래치며 배척하는 사람이 영웅으로 떠오르는 반면,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어울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던 존경받는 바리사이는 은연중에 죄인으로 질책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의 앞부분에서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고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을 듣는 회중에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예리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많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여주는 그런 종류의 사랑으로 그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법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렇다면 여인이 무엇을 믿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선의를 믿었다는 말씀이요, 무한한 속성을 지녔기에 횟수를 중요시하지 않고 다만 감사하고 자기를 버릴 줄 아는 마음을 중요시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었다는 말씀이다. 여인은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에다 내맡김으로써 완전한 용서를 얻어 누리게 되었으며, 마음껏 감사의 정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와 있다거나 그토록 유별난 호의를 보이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는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 싶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예수를 그토록 감동시켰다.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범한 죄의 횟수가 많든 적든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라는 권고이다. 바리사이의 문제점은 자신이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그는 고상한 삶을 영위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 하니만 용서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 까닭에 하느님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고 용서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참회하는 여인처럼 그분께 사랑과 감사를 표시할 수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런 그에게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 보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자문해 보도록 초대하신다. 스스로 용서받을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태도가 경직되기 마련이다. 예수께서 비유에서 지적하고 계시듯이 빚진 사람들이 갚을 돈이 없다고 해서 꼭 큰 죄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하느님의 자비에 내맡기는가 하는 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은 예수의 구원사업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몸을 내맡기는 신뢰를 의미한다. 참회하는 여인을 구원하였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각자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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