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세례를 받으신 예수 (루가 3, 21-22)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해설] 이 복음 내용은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가치체계에 도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영혼이 하느님 나라요 은총의 전달매체인 거룩한 씨앗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전례의식은 하느님 나라의 활동이 된다.
첫머리에 옮겨적은 성서 말씀은 요르단 강에서 이루어진 예수의 세례를 기술하고 있다.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위해 마련된 세례성사를 받으실 수 있었던가? 그럼에도 예수는 묵묵히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하고 요한이 말했을 때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요르단 강물로 들어가셨다. 예수께서 강물 속에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셨으니 우리의 죄와 합일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복음에서 예수께서 인류 가족과 죄, 몰락, 참상, 고통, 죽음을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순간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분이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아버지가 그저 천상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분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인간적 필요에 철저히 연대하고 계신다. 천상의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와,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는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신다. 따라서 인간적이 된다고 해서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가 누구이든 상관 없다. 하느님은 우리의 결핍과 고통에 철저히 함께 하신다. 예수의 세례는 그분이 누구이신가를 보여주는 외적 표시이다. 그분의 세례가 지니는 의미는 그분이 죄 많은 인류와 하나가 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진실로 인간 본성 차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성성을 포기하고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