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9일 , 서울주보 1695호, 생명의말씀
구요비 욥 신부│프라도회 한국책임
오늘 복음에서 유대인들은 5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의 인격의 신비, 즉 이분의 신성(神性)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42절).
성서가 말하는 앎은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함합니다. 한 인간과의 사랑 안에서 일어나는 심오하고 인격적인 체험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앎은 어떤 분을 향한 이끌림, 매력, 애착을 불러 일으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44절).
‘내가 누구를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볼 때, 개인은 자신이 알리는 내용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범위 안에서 알려질 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앎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알려주실 때에야 그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45절).
이런 배경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다”는 말씀의 의미가 밝혀집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지혜(1코린1,24; 콜로2,1-3; 에페1,17-18; 요한14,6)이십니다. 이분은 과거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인간의 살아있는 말로서 우리의 동시대인(同時代人)으로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느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는(콜로2,3) 주님께 대한 허기짐과 열정에 사로잡혀 살 때에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많은 기도의 시간과 깊은 묵상으로 관상에 이를 때에 그러합니다. 관상(contemplatio)이란 말을 풀어서 보면 ‘예수님과 내가 같은 시간 안에 산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7ㄴ-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