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1절).
오늘 복음은 아버지(聖父)의 아들(聖子)에 대한 애타는 사랑을 ‘하늘이 갈라지며(찢어지며)’라고 표현한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63,13) 하고 탄원하였는데, 오늘 하늘이 찢어지고(갈라지고) 성령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신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들에게만 필요한 세례를 받으시는 자기 비움과 낮아지심 안에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聖靈)이 임재(臨在)하신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人性)으로 받으신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聖子)로서 지니신 신적 생명인 신성(神性)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바로 성령 안에서의 삶을 말하는데 세례자 요한은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8절) 라고 선포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성령께서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이루시는 성화(聖化)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오! 사랑의 생생한 불꽃이여!
부드럽게 상처를 입히고
내 영혼의 아주 깊은 중심에!
이제 당신은 무심하지 않고,
만일 원하신다면 이제 끝내주소서!
달콤한 만남의 장막을 찢어주소서!’
-「 사랑의 산 불꽃」첫째 노래 -
하늘이 갈라짐(찢어짐)은 동양적인 표현으로는 개천(開天), 또는 개벽(開闢)처럼 들린다. 장자(莊子)는‘開天者德生(하늘의 본성을 여는 자는 덕을 만든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늘의 본성을 따르는 자는 사람들을 친구로 모은다’는 뜻과 같다고 한다. 예수님의 세례는 천지개벽(天地開闢)을 알리는 조짐과 같으니 이 분 안에서‘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 묵시 21,1)이 이미 시작되고, 이를 위해 일하시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다.
하느님에게 예수님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자‘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되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자의식과 확신을 갖기도 쉽지 않지만, “내가 과연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로서 반듯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볼 때 더욱더 그러하다. 예수님 안에서는 이것이 가능했는데 바로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