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 2009. 03. 08.>> 생명의 말씀
그분의 옷은 새하얗게 빛났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나는 프라도회의 국제회의에 참석 중 김수환(스테파노)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접하였다. 서둘러 귀국하려는데 여러 신부님들이 만류하며 “우리와 함께 기도하며 한국 교회의 슬픔에 참여합시다!” 하고 간청한다! 참담한 심정으로 지내며 기도하다가 “아! 추기경님은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웃으시며 강복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세’를 바라보며 더욱 그러하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 모두에게 ‘모세’와 같은 분이시다. 시공을 초월하여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인들의 통공을 믿나이다!’라는 신앙 고백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이야기는 특별히 ‘그분의 옷은 … 새하얗게 빛났다(3절)’고 말한다. 몸은 인간의 영혼이 머무르는 집이며 사람의 속마음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예수님의 이 외적인 변모는 이분의 내적인 본성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여준다. 즉, 예수님의 인간성(人性)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계시해 주신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이란 다름 아니라 이분이 지니고 계신 선한 마음(善性)을 말하는데 ‘선(善)은 존재(存在)의 자기 확산성을 지니고 있다’(토마스 아퀴나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선생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5절)’ 하고 고백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참된 아름다움(美)이란, 선한 마음(善性)이 외모로 흘러넘쳐 찬란한 빛처럼 확산되어 가는 걸 말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영광의 주님의 모습(묵시 1,13-16)을 미리 보여주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를 암시하신다(9절).
예수님의 존재 안에 깊이 새겨져 있는 선하신 마음이란 바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을 온전히 아낌없이 내어 주시려는 오롯한 심정과 결연한 의지이다. 이 선한 의지는 이미 이분의 탄생과 더불어 온 생애 안에서 실현되었기에 부활의 영광이 이분의 수난과 십자가의 길 안에 이미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의 아름다움은 온 생애와 모든 행동 안에 퍼져 있다. 말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 모범 하나 하나가 이분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머지않아 당신이 겪으실 수난에 앞서, 이 수난 안에 감추어져 있는 아름다움의 신비를 오늘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의 신비 안에 주님의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음을 우리에게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주님처럼 선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살려고 할 때에 주님 영광의 빛이 이미 이 고통 안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7절).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6-18).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