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대축일 서울주보>> 2009. 04. 12. 생명의 말씀
보고 믿었다
나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고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이제는 고인이 된 친지들이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뇌리와 추억에서 잊혀지기보다 더 생생하게 떠오르고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지 나의 기억력이 비상하기 때문이 아니고 어쩌면 이분들이 계속 존재하며 살아 계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는 예감이 들곤 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신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진술인 코린토 전서 15장을 읽다보면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죽은 이들의 부활을 먼저 전제한다(13절, 15절, 16절)‘ : 죽은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희랍의 현자들이 간파한 ‘영혼의 불멸성’이나 불교의 가르침인 ‘환생(re-incarnatio)’이 죽음 저 너머의 지속적인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염원과 희망을 표현하며, 또 이를 나름대로 통찰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주님 부활에 대한 전이해(前理解)라고도 하겠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가 본 ‘빈 무덤’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는가?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신 예수님에게 죽음은 결정적이지 못하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지니신 신성(神性)으로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 생명(生命)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는 생명만이 있기에 죽음은 결코 하느님에게 속하지 않는다. 죽음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인간성(人性) 안에 감추어져 있는 신성(神性)을 확인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어 육신이 영혼과 분리된 뒤에도 육신은 항상 신성과 결합되어 있었다.
희랍의 현자들이 간파한 ‘영혼의 불멸성’이나 불교의 가르침인 ‘환생(re-incarnatio)’이 죽음 저 너머의 지속적인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염원과 희망을 표현하며, 또 이를 나름대로 통찰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주님 부활에 대한 전이해(前理解)라고도 하겠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가 본 ‘빈 무덤’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는가?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신 예수님에게 죽음은 결정적이지 못하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지니신 신성(神性)으로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 생명(生命)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는 생명만이 있기에 죽음은 결코 하느님에게 속하지 않는다. 죽음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인간성(人性) 안에 감추어져 있는 신성(神性)을 확인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어 육신이 영혼과 분리된 뒤에도 육신은 항상 신성과 결합되어 있었다.
“인간의 이 두 구성체인 영혼과 육신 안에 남아 있는 신성(神性)의 단일성으로 이 둘은 다시 결합됩니다. 이처럼 두 구성체의 결합이 분리됨으로써 죽음이 오고 분리된 이 둘의 결합으로 부활이 일어납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한편, 빈 무덤 안에서 천사들은 한결같이 ‘그분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루카 24,7; 마르16,7)고 전한다. 주님의 부활은 하느님의 약속의 실현이다(요한 20,9). 하느님께서는 인류와 맺으신 계약에 충실하시며 당신의 언약이 담긴 말씀에 성실하신 분이시다. 이 하느님의 약속은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을 말하며 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와 죽음보다도 더 강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는 길은 오늘 복음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처럼 예수님에게 걸었던 인간적인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 내린 ‘어둔 밤’ 가운데서도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주님과의 관계와 사랑에 충실할 때이다.
한편, 빈 무덤 안에서 천사들은 한결같이 ‘그분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루카 24,7; 마르16,7)고 전한다. 주님의 부활은 하느님의 약속의 실현이다(요한 20,9). 하느님께서는 인류와 맺으신 계약에 충실하시며 당신의 언약이 담긴 말씀에 성실하신 분이시다. 이 하느님의 약속은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을 말하며 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와 죽음보다도 더 강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는 길은 오늘 복음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처럼 예수님에게 걸었던 인간적인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 내린 ‘어둔 밤’ 가운데서도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주님과의 관계와 사랑에 충실할 때이다.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에게 “그대는 죽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것이다(가브리엘 마르셀). 부활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처지에서도‘인생은 아름다워라!’라는 生의 긍정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또한 인간이 이룩하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겪는 암울한 부조리와 모순 가운데서도 이 역사를 긍정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위하여 헌신하는 성실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