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2일. 서울주보 1691호, 생명의 말씀.
구요비욥신부│프라도회한국책임
내가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본당에서 세례를 받으신 불문학 교수님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르쥬 베르나노스 저/ 정영란 역)를 최근에 선물로 받았다. 주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이 책을 밤을 꼬박 새워 읽으며 심오한 영적독서를 접하는 심정이다. 조 르쥬 베르나노스는 불란서의 가톨릭 작가인데, 인간의 내면에서 해파리처럼 입벌리고 있는 권태와 허위, 공허와 위선 안에 짙게 드리워진 악의 세력과 싸우며 살아가는 사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젊은 사제의 모습 안에는 아르스 본당의 요한 비안네 성인의 삶과 영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자주 ‘범용(凡庸)한 사제는 추하다’라고 가혹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 작품 안에서는 범용한 사제에게까지도 따뜻한 시선과 연민의 정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사제는 위암의 병고를 늘 짊어지고 신음하며 살고 있는데, 내성적 성격으로 유약하고 서툴며 비효율적인 사목으로 자주 실수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을 우직하게 사랑하며, 그 영혼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다. 약점 투성이의 무능해 보이는 이 젊은 사제의 순수한 마음 안에 깃들어 있는 영적 감수성이, 병들어 있는 영혼들의 내면 세계를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번득인다.
이 마을의 유지인 백작부인과의 우연한 만남과 긴 영적대화 중에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을 증오하고 거부해온 이 귀부인이 하느님과 화해하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 ‘평안히 있을지어다’ 하고 나는 부인에게 말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평화를 무릎 꿇고 받았었다…. 내가 그 평화를 부인에게 주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이렇게 줄 수 있다는 것은 이 얼마나 신묘한 일인가. 아 아 우리들 두 빈손의 그윽한 기적이여.”(252쪽)
죽기 전의 편지에서 이 귀부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조그만 아기에 대한 절망적 추억이 저를 모든 것에서 별리하여 무서운 고독 속에 몰아넣어 두고 있었는데, 이제 다른 어린아이 하나가 이 고독에서 저를 끌어내 준 것 같이 생각됩니다…. 신부님은 정녕 어린이시니까요. 좋으신 주님께서 신부님을 그대로 또 영원히 지켜주시기를(244쪽)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며 요청하시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어린이의 마음이다.(마태18,3-4) :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8절)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1,17)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의 부르심은 파견을 위해서이다. 즉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분을 알고 사랑하고 따르는 참다운 제자로 살아갈 때 또한 부활하신 주님(kyrios)의 사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in persona Christi) 일할 수 있다. 여기에 제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가난, 어린이의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어린이는 바로 자신의 무력감에서 제 기쁨의 근본원리를 겸허하게 이끌어낸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제 어미에게 맡긴다. 제 온 목숨, 인생 전체가 어머니의 시선 속에 있는데, 그 시선은 바로 미소이다.’(베르나노스)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全無)’ 안에서 주님이 모든 것(全部)을 채워 주시고 사도들 안에서 함께 일하신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다.’(12-1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