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 주님 수난 예식
※ 전례거행
입당
침묵기도와 본기도 : 참회의 표시인 침묵과 무릎 꿇음 (또는 엎드림).
제1부. 말씀의 전례
1. 말씀 선포
제 1독서 : 이사 52,13-53,12 (야훼의 종)
제 2독서 : 히브 4,14-16; 5,7-9 (하늘에 계신 대제관)
수난복음 : 요한 18,1-19,42 (게세마니 동산에서부터 십자가 처형과 무덤 안치까지)2. 보편지향기도 10가지
교회, 교황, 성직자와 수도자와 신자, 예비신자, 그리스도인의 일치, 유대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 위정자, 고통 받는 이들.
제2부. 십자가 경배
1. 십자가를 보여주는 예식: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2. 주례자와 신자들의 십자가 경배제3부. 영성체
1. 주님의 기도
2. 영성체
3.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퇴장
※ 전례 거행의 의미
사실 겉으로만 보면 십자가의 신비는 철저히 감춰져있다. 로마 역사에서 볼 때 십자가형은 오직 대역죄인에게만 행해진 처형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십자가는 주님의 자기 비움 의 극치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성과 완전히 혼인하셨다.
성금요일 복음으로, 항상 사도 요한이 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듣는다.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스스로 장엄하게 죽음을 대하시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분, 하느님으로 드러난다. 요한 복음은 죽음에 놀라지 않으며 숙명처럼 죽음을 만나지 않는 유일한 인간 존재로서의 예수를 소개한다. 죽음을 공포에 떨게 하는 자신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생명력으로 예수는 자유롭고 위대하게 죽음을 대면하신다.
<아무도 내 목숨을 빼앗지 못합니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내놓습니다> (요한 10,18).
그래서 말씀 전례 가운데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이를 위해 고통을 당한 ‘야훼의 종’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그리고 화답송으로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루가 23,46)라고 응답한다.
제2독서인 히브리서에서 말하기를, 이제 이분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을 중재하시는 대제관이 되신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 교회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주님처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서 장엄하게 기도한다. 이것이 보편 지향 기도이다.
우리는 십자가 경배 예식을 거행한다.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도구이다.
모든 구원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왔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옆구리 상처에서 피와 물이 나왔는데 (요한 19,34), 피는 성체성사를, 물은 성령의 은총을 통한 세례성사를 상징한다. 그래서 십자가는 교회의 근원적인 성사들인 세례와 성체성사가 흘러나오는 근원인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경배 때 사제는 십자가를 들고 오면서 말한다: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그리고 신자들은 응답한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이제 십자가는 죄인의 형틀에서 구원의 표지로 그 의미가 바뀐다. 우리는 일상에서 기도하기 전에 또는 식사를 하기 전에 십자성호를 긋는다.
에제리아 여행기 (약 4세기 말)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신도들은 성금요일에 최후만찬이 있었던 다락방에서 골고타로 옮겨가며 기도했다. 주교는 백성이 경배할 수 있도록 십자가 나무를 보여준다. 로마에서는 8세기 경 교황은 라테란 대성당에서 십자가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대성당으로 행렬하여, 부제가 십자가 유물을 들고 가면 교황은 향로를 들고 그 뒤를 따른다고 한다. 대성당에 도착하면 십자가 나무에 대한 경배를 하고 말씀의 전례를 거행한다. 영성체는 없었다. 오늘날 로마에서는 성금요일 밤에 교황이 콜로세움에서 십자가 길과 십자가 경배를 거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