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자(破産者)
걸풍/김형풍
눈 내리는 엄동설한 어두운 새벽 길에
쓰잘데 없는 짐 버리지 못한 채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무연고지로
삶의 터전이 옮겨진다
버리지 못하고 끌고온 짐짝들
셋집 옥상에 천막으로 덮어놓고
성당으로 달려가 참회의 눈물로
기도한 때가 엇그제 같은데
어언간於焉間 15 년이 흘렀다
사정 없이 날라왔던
법적조치 공갈 협박장과 지긋 지긋한 독촉장
받을 필요 없게 되니 세상 이렇게 편할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보 같이 질질 끌리면서
피 말리는 생활을 했었는지,
그래도 양심은 살아 있어
최선을 다 한답시고 하다 하다가
바보 천치 처럼 바닥이 들어 나고서야
때늦은 결단에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파산자,
마음을 텅 비운 무소유의 세계가
이토록 가볍고 홀가분 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고 있는
파산자.
어차피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에 매달려 빈손으로 왔거늘
무엇이 두려울게 있는가
인생은 어차피 고해苦海인 것을,..../
훌훌 가볍게 털고 나니
차라리 뱃속 편하다면서도
애들이 애비의 심정을 알기나 할까,
다 큰 애들을 걱정하는 파산자가
허탈虛脫 웃음을 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