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깊이
2012. 11. 23. 오후 8:09:43
글자
풍경의 깊이
강 훈 정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
이토록 텅 빈
평생 바람 소리만 날 것 같은 이 자리
키 낮은 풀들 한데 모여 웅크린 그 틈새로
켜켜이 그리움도 쌓이고 있다
이렇게 쌓이다 보면 날개가 될 법도 한데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은
얼음처럼 차고 흰 달 같다
모두들 떠났어도 잘 견디고 있다는
무한히 늙은 고요와 아직은 어린 듯한 슬픈 고요가
내 안의 어떤 정체와 맞물려
부서지고 싶은,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해도
어차피 이름이란 서로에게 소중하게 불려질 이유 와도 같지 않을까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
무게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참 많이도 가벼워진 , 그리고 깊어가는 풍경
키 큰 미루나무에 매달린 몇닢 안되는 바삭한 나뭇잎
겨자씨 닮은 강아지풀
요란스럽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예전엔 왜 몰랐었을까
꿈결인 듯 낯익은 향기에 실려 온
손에 닿을 수 없는 고마움의 날개
그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때쯤
나 역시 많이 가벼워질 것같다
2012.11. 강원도 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