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故 한성렬 형 묘소를 다녀 와서

2011. 5. 31. 오후 11:19:48

글자

 

 

賻 儀

 

5월30일, 故 한성렬 형 묘소를 다녀 와서

 

(막걸리 한 잔과 고인에게 올리는 글 " 悲報를 접 하고 " 를 올리고 큰절을 했다)

 

 

5월 30일, 故 한성렬 형 묘소를 다녀 와서

 

 

  걸풍 김 형 풍

 

 지난

4 월 21일

오후 4시 50분 경

내가 참 좋아 하는 형님께서

이미 2 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받고

 

아픈 가슴을 부여 잡고

< 悲報를 접 하고>를

정신 없이 써 내려 갔던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 하고도 10 일이 되었습니다.

 

그저 복지관 노인대학에 다니면서

심심풀이로 몇가지 공부를 한답시고

지내고 있을 뿐인데

비보를 접한 지가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도

아직 까지 미루고 못 가고 있었던 것은

몸이 불편한 아내를 부축 하고

병원엘 다니느라

미루어 왔던 것인데

마치 큰 죄나 진 것 처럼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제 ,

아내도 좀 병세가 좋아져

혼자서도 걸을 수가 있게 되어,

 

5월을 넘기기 전에

오늘은 반드시

형님 묘소를

다녀 오기로 결심을 했고

늘 나를 따르는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오늘은 넘기지 말고 꼭 다녀 오라는 것이였습니다.

 

대신

아내를

자기가 모시고

병원엘 다녀 오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목감기가 심하게 들어

목이 탁 갈아 앉았고

근방 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기로 하고

집에서 쉬기로 하여

나는

이른 아침에

편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서울역에서

09시47분 발 포항행 새마을호를 탔고

아주머니와 통화를 한 터라

11시 42분에 대전에 도착을 했고

도착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 하셨냐고

아주머니께서

또 전화를 주셨습니다. 

 

약속 대로

아주머니께서는

막내 딸 영진이를 앞세워

 역에 나오시어

나를 극진히 맞아 주셨습니다.

 

딸이 자가용을 운전 하여

아버지께서 누워 계신 

묘 까지 안내를 했고

중 2 짜리와 초등 4년생 두 딸을 둔

딸 영진이가 효심을 발휘 하는 것이

보기에 참 좋았고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형수님께서는

우리 아네스 처럼

척추관협착증으로

잘 걷지를 못하실 정도로

불편을 겪고 있으셨습니다

아내로 하여 직접 겪었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아는 저로서는

형수님을 부축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완전 여름 날씨

5월의 태양이

한 여름 같은 땍볕을 내려 쬐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공동묘지

<진달래 공원 묘지>라

이름이 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 성도 한성열 여기에 잠들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묘비 앞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자기의 아내와

자기의 딸과

함께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인 한성렬 형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따라 올리고

너무 늦게 찾아 오게 되어

사죄 하는 마음으로 큰 절을 올리고

내가 준비해 온 글

<悲報를 접 하고>를

낭독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절대로 형수님 앞에서

눈물을 보여 드리지 않겠노라고

그리도 다짐을 하였건만

어느새 나는 감정에 복밪쳐

흐느끼다가

끝내는 참아낼 수가 없어

울음이 푹발하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께서도

흐느끼다가 참아내지를 못하고

울기 시작을 했고

그 딸 영진이도

눈시울을

닦아내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오오!!

하늘이시여!

지금 이 현장을 내려다 보시겠지요?

바로 옆에서 잠들어 있는 영혼이

 

오오!

형풍아!

내가 좋아 하는

형풍아!

네가 찾아와 주었구나,

내 그럴줄 알았다고

소리내어

반가워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오!

주님!

저는 믿습니다

반드시 하늘나라에서

반겨 주었으리라 확신을 합니다.

 

사랑 많은신 하느님!

아무런 고통이 없고

평화로운 그 세계에서

편안히 영면 하도록 보호 하소서.

 

형님!

아주머니께서

몸이 불편 하신 것을

잘 아시고 계시지요?

 

 

속히 졿아지시어

마음 대로 활개를 피고

다니실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형님!

편히 계세요,

다시 한 번 오겠습니다.

 

형수님께서는

나를 극진히 마지 해 주셨습니다

돌아가신 형님이 형풍씨 얘기를 많이 하시고

제일로 좋아 했다고 말씀을 늘 하셨다는 것이였습니다.

 

하산 하여

좋은 메뉴로 점심을 하는데

이슬이 한 병을 주문 하시어

형수님께서 한 잔을 딸아 주시며

<건강해 보이시어 참 보기에 좋습니다>라고

한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였습니다.

 

그 형수님께서도

아내가 고생한 척추관협착증으로

걷기에 심하게 불편을 겪고 계시는 것이어서

아내를 좋게 해준

병원으로 모실 계획으로

병원 소개를 자세하게 해 드렸습니다.

 

이 날

유성온천 버스터미널에서

 2시 40분 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행에 몸을 기대고

답답한 심정을 쓸어내리며

눈을 감고

낮잠을 청했습니다.

 

서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되었을 때는

이미 오후 5 시 30 분이

훨 넘었고

응어리진 가슴 한 구석이

펑 뚤린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염려 해준 덕분에

잘 다녀 왔노라고

저녁 식사를 하지말고

7시 40 분쯤에

우리가 잘 다니는

삼성홈프러스 앞에 있는

종로빈대떡집으로

나오라 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잘 알겠노라고

천천히 오라고  

했습니다.

 

예측 시간이 좀 어긋나

20 분이나 지난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 되었고

그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서

손을 들어 흔들어

반겨 주고 있었습니다.

 

수고 했다는 그의 말과

주고 받는 막걸리에

피로가 화악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 젖은 얼굴로 수심에 찬 미망인 형수님과 딸 영진이

중심을 잡는 형수님과 딸 영진이

슬픔에 잠긴 형수님을 위로 하며,...../

 

잡초를 뜯으며 묘를 다듬고 계시는 형수님

준비해 간 <悲報를 접하고>글을 형수님이 원 하시기에 형수님께 드리고,..../

(점심 식사 전에 형수님과 딸(영진)의 포즈, 다소 안정된 표정을 하신다)

 

유성 시내로 들어와 모 식당으로 자리를 잡고

불고기 백반으로 늦은 점심을 하며,

형수님께서는 이슬이 한 병을 주문 하시고

손수 한 잔을 따라 주셨습니다.

구지 싫다고 뿌리치며 마다 하는 저에게

다소의 교통비와 버스표 까지 끊어 주시는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며,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다며

정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씩이나 정중하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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