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함께 공부해요.

2008. 9. 23. 오후 6:23:26

글자
묵시록을 읽을 때마다 드는 느낌, 두렵다, 무섭다, 그리고 난해하다 정도였습니다. 기회가 있어 평생교육원에 성경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맨 먼저 요한 묵시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배움을 시작한 입장이라서 부족하기만 한지라 제대로 전달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에 제가 듣고 공부한 내용들을 조금씩 옮겨볼까 합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언제라도 지적해 주시고 성서를 읽으시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과 문학 유형.
 
1. 묵시록의 참된 의미를 찾아 내려면 그것이 씌어진 역사적 상황을 알고, 또 그것이 특별한 종류의 문학작품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시록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재임하던 기원 후 95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때는 교회가 제국 전역에 걸쳐 심한 박해를 받던 시기였습니다. 제국의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모두 쓰고 있었지요.
황제를 주님이라 부르도록 강요하고 황제의 절대권력을 구축하기 위해 황제에게 종교의식을 바치게 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의식에 참여해야 하기에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 앞에 높이게 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붙들려가고 사랑하는 이들이 고문당하고, 죽음을 목격하면서 신앙이 과연 이 많은 고통을 치룰 만한 가치가 있는가 묻게 되었습니다. 물론 박해는 의도했던 효과를 낳고 있었습니다.
저항하는 자들은 살해되고 나약한 이들은 굴복하였고, 갈수록 폐색이 역력해지는 싸움을 포기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온 세계에 정복하지 못할 대상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위기 속에서 묵시록이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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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러한 상황속에서 요한은 로마인들이 그 모든 권세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박해받는 자기 형제자매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합니다. 하느님은 과거에 다른 모든 사악한 제국들을 멸망시키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현재의 제국도 철저히 쳐부수실 것이며, 로마 제국은 철저한 악이며 사탄의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은 단순한 시민불복종보다 훨씬 더 깊은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기에 자신의 메시지를 로마 당국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암호 같은 것으로 기록해야만 했습니다.
자기 편 사람들에게는 수정처럼 투명하지만 적들한테는 가능한  한 모호한 언어를 사용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묵시적'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한 양식으로 기록함으로써 이 목표를 달성합니다.
 
3. 묵시문학은 모든 것이 상징적 언어 (숫자, 색채, 형상, 짐승들, 일월성신, 우주의 요소들)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환상에 찬 작품이면서도 본질적인 메시지 몇 가지를 안중에 두고 있다는 원칙에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화면들을 실컷 즐기되 끝에 가서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파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는,
첫째, 부활하신 예수는 역사상의 모든 악을 이기는 승리자이다.
둘째, 신앙인들은 인내로이 박해 중에 신앙을 지키고 순교까지도 평안한 심경으로 겪어내야 한다. 그리스도의 승리에 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그들에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선과 악의 투쟁에서 선이 최후의 승리를 한다는 것과 재앙 속에서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인간들 모습을 보며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준다는 것입니다.
 
대강 묵시록이 쓰여지게 된 시대적 배경과 묵시문학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쓰여진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성경속에서 상징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세계사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다는 견해라든지, 평화가 지배하는 공상 같은 천년왕국(여호아 증인)을 예고했다고 보아서도 안 됩니다. 이런 식의 해석은 묵시록을 단지 흥미 위주의 점서나 수수께끼 같은 예언서로 취급하고 이 책의 참다운 문학 장르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 됩니다.
 
*묵시록의 상징성 : 요한은 이 책이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자들에게 이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저항 문학 작품이 당국자들 눈에 띄었을 경우 그들은 분명코 근절 책동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적대적인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상징을 폭넓게 사용합니다.
 
1. 숫자 - 묵시록에는 완전한 숫자와 불완전한 숫자 두 종류가 나옵니다.
  ㄱ)완전한 숫자 - 셋, 넷, 일곱, 열, 열둘입니다. 셋은 신적인 충만함, 완전성을 표상하는 숫자로, 어떤 것을 세 번 이야기하는 것은 최대의 강조를 의미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는 말은 그분을 지극히 거룩하신 분으로 찬미하는 것입니다.)
넷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으로 세상의 네 귀퉁이를 나타내는데, 온 세상, 창조계 전체, 곧 우주를 나타냅니다.
일곱은 충만함과 완전을 나타냅니다. 일곱 교회하면 모든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지요.(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
완성을 나타내는 또다른 숫자는 열입니다. 천(10x10x10, 완전의 극치)과 같이 열이 여러번 제곱되는 숫자는 중대함과 온전함을 표현합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도 일곱과 같이 완성과 연관된 호의적인 숫자로, 열 두 달, 열 두 지파, 열 두 사도 등이 있습니다.
열둘을 제곱하고 여기에 천(무한함을 상징하는 숫자)을 곱한 것이 십 사만 사천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나오는 이 숫자의 백성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한대의 숫자이기 때문에 새 이스라엘인 교회에 속하는 모든 이들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숫자가 되는 것입니다.
 
ㄴ)불완전한 숫자 - 분수가 들어 있는 수와 여섯이라는 숫자입니다.
삼 일 반이나 삼 년 반이라는 기간은 짧은 기간을 의미합니다.(완전한 숫자인 7의 반)
여섯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 일곱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불완전을 표상합니다. 또 열둘의 반이기도 하지요.전적으로 철저한 불완전을 표현할 때는 여섯이라는 숫자를 세 차례 반복합니다. 짐승에게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가 주어지면 그 짐승은 완전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것이 됩니다.  묵시록에서 666이라는 숫자는 최고의 악을 상징하는 네로 황제를 지칭한다 합니다.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알파벳 문자들을 숫자로 이용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에 따르면 네로 황제 (Nero Caesar)라는 이름의 글자들이 나타내는 수치의 합계가 666이 된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묵시록에 나타나는 색깔들과 물체의 상징성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서를 읽으시는데 미약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저의 몫은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하더라도 사랑으로 이해해주세요.
백 마르티노.-

댓글 2

  • 2008년 9월 23일 오후 11:00

    사랑을 서로 나누면 더 큰 사랑이 되듯, 배움 역시 서로 나누면 모두가 풍요로워집니다. 마르티노 형제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8년 9월 25일 오전 12:31

    저는 요한묵시록이 마치 SF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저 예언하는 부분인듯 한데 너무나 어렵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 미묘한 내용과 뜻이 숨어 있을 줄이야....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성경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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