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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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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1,26-3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또 유력한 자를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복음 마태오 25,14-30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주인께서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그 다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저에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을 알고 있었다면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 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여봐라, 저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어느 시각 장애인 소녀가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던 사람이 소녀에게 물었지요.
"너는 왜 연을 날리니?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면서…"
그 말에 소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 연을 보고 기뻐할 거예요. 그리고 나도 연이 나를 하늘 위로 끌어당기고 있는 듯 한 느낌이 좋아요."
이 글을 보면서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눈을 뜨고도 마음이 닫힌 사람들이 많지요. 남이 볼까 봐, 그래서 남들에게 놀림을 당할까봐 장롱 위에 얹어 놓아 뽀얗게 먼지가 앉은 연이 우리에게는 없는 지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녀의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녀는 앞을 볼 수 없기에, 하늘 높이 나는 연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행동을 하지 않던가, 아니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의 단점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 주려는 마음을 가졌지요. 그리고 그 순간에 하늘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의 행복이라는 것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이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받은 달란트는 무엇인가 라고 고민을 하곤 합니다. 즉, 왜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많은 달란트를 주고, 나에게는 주지 않는가? 나에게도 저 사람 만큼의 달란트만 있다면 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사랑을 전하면서 살텐데… 라고 말하곤 하지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달란트라는 것이 하느님께도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똑같이 대하시지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분명 달란트의 수가 다르지만, 그들에게 원하시는 바는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만든 사람이나,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로 만든 사람이나 똑같이 칭찬을 하십니다.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그대로 가져오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현재 자신의 능력 없음에 한탄하면서 그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받은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앞을 못 보는 소녀가 느낀 행복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이 이 연을 보고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은 뒤에, 소녀는 하늘 위로 자기를 끄는 그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소녀가 나는 뭐 앞을 보지도 못하는데 하면서 연 날리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기쁨, 행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지요?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기쁨과 행복도 내 앞으로 다가옵니다.
남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여 봅시다.
아버지의 유언(최병남) 보육원에서 자란 남매가 장성해 아버지를 만나지만 화상으로 일그러진 모습에 질색하고 다시는 찾지 않았습니다.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남매는 마지못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남매는 장례식장에서 화장하지 말아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해 들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남매는 화장한 다음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물건들을 태우다가 우연히 한 권의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그 일기장에는 아버지가 화재 때 남매를 구출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아버지는 소방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속으로 뛰어들어 어린 남매를 구하고 아내를 여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내용도 남겼습니다.
“보고 싶은 내 아이들아, 미안하구나.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내가 죽거든 절대 화장은 하지 말아다오. 난 불이 싫단다. 불에 타는 무서운 꿈에 시달리며 30년을 넘게 살았구나.”
두 남매는 후회하며 통곡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한 줌의 재가 된 뒤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으면 언젠가 크게 후회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