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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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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키엘 25,1-10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띠로의 우두머리에게 일러 주어라. '주 하느님이 말한다. 네가 으쓱해 가지고, 나는 신이다, 바다 한가운데 군림한 신이다, 하면서 속으로 신이라도 된 듯 우쭐댄다마는 그러나 너는 신이 아니요 사람이다. 그렇다. 너는 다넬보다 슬기롭다. 아무리 깊이 숨은 길도 너는 다 안다. 너는 슬기롭고 현명하여 재산을 모아 창고를 금은으로 가득 채웠다. 무역 기술이 썩 좋아 재산이 많이 모이니까 그 재산 때문에 그만 네 마음은 거만해졌다. 너는 속으로 신이라도 된 듯 우쭐댔다. 그래서 주 하느님이 말한다. 나 이제 뭇 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사나운 외국인을 끌어들여 너를 치게 하리라. 그들은 칼을 들어 너의 재치로 만든 미술품을 부수고, 너의 영화를 짓밟으리라. 너를 구렁에 처넣어, 바다 가운데서 무참히 죽게 하리라. 너를 죽이는 사람이 앞에 닥쳐도 너는 감히 자신을 신이라 하겠느냐? 사람 손에 죽으면서도 신일 수 있겠느냐! 아니다. 어디까지나 너는 사람이다. 너는 외국인들 손에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 죽듯이 죽어 가리라. 내가 선언하였다. 반드시 그대로 되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복음 마태오 19,23-30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나를 따랐으니 새 세상이 와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첫째였다가 꼴찌가 되고 꼴찌였다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깊은 산 속 조그만 암자에 마음의 즐거움이 곧 최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은 수도승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도승이 마을로 탁발을 내려왔다가 마침 그 마을의 잔칫집에 들르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수도승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고 그 주위를 빙 둘러앉았습니다. 수도승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술이 아닐까요?”
“노래가 아닐까요?”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랑이 제일이지요.”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수도승을 일제히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수도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하게 말해요.
“여러분들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고 보면 처음에는 즐겁지만 나중에는 괴롭기 만한 고통의 원천이랍니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마음이 가난해서 욕심이 없고 행실을 바르게 해서 선행을 쌓는 것이랍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나를 괴롭게 하는 고통의 원인을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부자는 곧 악한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올바르게 살면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자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강한 의문을 표시하지요.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특히 성서를 보면 부(富)란 것이 하느님의 또 다른 선물로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였고 반대로 가난은 죄의 값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하여 마련된 필수 요건이기도 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서를 자세히 보면, 그 부의 쓰임새가 늘 이웃 사랑을 위한 것일 때 진정한 축복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따르는 행동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재물이 더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지적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이 세속적인 재물이란 것이 결국 자신을 구원으로 이끌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재물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창조의 뜻이 그 안에 사라졌을 때는 더 이상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바로 악마의 물건이 되어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 창조의 뜻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하느님 ‘보시니 참 좋은’ 것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영원에서 영원으로 Cafe에서 옮긴 글입니다) 철학자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을 닫는 것도 여는 것도 모두 당신의 자유입니다. 다른 사람이 강제로 열거나 닫을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과거의 상처와 원망, 미움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닫아 버렸다면 당신의 닫힌 마음을 열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뿐입니다.
왜냐고요?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마음의 문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고 손잡이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때 자물쇠를 여는 것은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용서하면 신기하게도 저절로 마음의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싶어집니다.
헤겔은 '사랑에 의한 운명과의 화해'라는 말도 했습니다.
사랑이란 바꿔 말하면 용서와 관용을 가리킵니다. 원망과 미움을 승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터뜨리거나 푸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대단합니다. 사랑으로 용서하면 원망도 미움도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왜 원망하고 미워했는지, 마음의 어디가 아팠는지조차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과거,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받아들일수 있게 됩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지금과 미래의 모든 것을 받아 들인다는 의미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