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열며(04,08,13)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004. 8. 13. 오후 10: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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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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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키엘 16,1-15.60.63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온갖 역겨운 짓들을 깨우쳐 주어라.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 하느님이 말한다. 네 족보를 캐어 보면 너는 가나안 출신이라, 네 아비는 아모리인이요 어미는 헷 여인이다.
네가 나던 일을 말하자면, 네가 세상에 떨어지던 날 탯줄을 잘라 줄 사람도 없었고 목욕시켜 줄 사람도 없었으며 소금으로 문질러 줄 사람도 없었고 포대기에 싸 줄 사람도 없었다.
너를 애처롭게 보아 이런 친절을 베풀어 줄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에 떨어지던 날, 너는 들에 내버린 개구멍받이 신세였다.
내가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발버둥치는 너를 보고, 핏덩어리야 살아라. 들풀처럼 자라나거라 하였더니, 너는 자라고 커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너는 젖가슴이 부풀고 거웃도 자랐는데 알몸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나는 지나가다가 네가 꽃다운 한창나이가 된 것을 보고 내 겉옷자락을 펴서 너의 맨몸을 감싸 주었다. 나는 맹세하고 너와 약혼한 사이가 되었다. 주 하느님이 하는 말이다. 너는 내 사람이 되었다.
나는 너를 목욕시키고 너에게 묻은 피를 닦아 주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수놓은 옷을 입혀 주고 고래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겨 주고 아마포 띠를 띠어 주었으며 비단 겉옷을 입혀 주었다.
너를 보석으로 단장하고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고리를 달아 주었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족두리를 씌워 주었다.
이렇게 너는 금은 패물로 단장하고 모시옷에, 비단옷에, 수놓은 옷을 입고 고운 밀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게 되었다. 너는 점점 더 아름다워져 마침내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내가 너에게 입혀 준 영화는 한 점 티 없이 아름다웠으므로 네 명성은 만방에 떨쳤다. 주 하느님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명성을 미끼로 삼아 몸을 팔았다.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몸을 내맡겨 마구 놀아났다.
그러나, 나는 네가 처녀였을 때 너와 약혼했던 것을 생각하고 너와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계약을 맺으리라. 너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나에게 용서받고는 지난 일들을 생각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이 되어 다시는 입도 벌리지 못하게 되리라.'"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복음 마태오 19,3-12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와 만드셨다는 것과 또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들은 다시 "모세는 '아내를 버리려 할 때에는 이혼장을 써 주어라.' 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가?"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아내와 이혼을 해도 좋다고 하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음행한 까닭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간음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예수께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더니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





결혼한지 십여 년 된 부부가 있었습니다. 요즘 세태가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부부도 역시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이 점차 사라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사사건건 의견이 대립되고 충돌이 잦아서 소위 이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신자의 이혼은 교회법 상 금지되어 있으므로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고심하다가 십 년 전 자신들에게 혼인성사를 베풀어주신 신부님을 찾아가서 이혼성사를 청해 보리라 마음먹었어요. 왜냐하면 혼인성사가 있듯이 이혼성사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부부가 함께 지난 날 혼인 주례 신부님을 찾아가서 "신부님, 우리 이혼을 하게 허락해 주세요."하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아니, 이 사람들아! 행복하게 살다가 날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이혼 통고하러 왔단 말인가?"하고 버럭 화를 내시면서, "그리고 우리 가톨릭에 이혼이 말이나 되나?"하고 나무라셨지요.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간의 골이 얼마나 깊었던지 "신부님, 혼인성사가 있으면 이혼성사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 이혼성사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십시오."라고 계속해서 간청했습니다.

"흠, 그러니까 둘이서는 이제 더 이상 살기 싫다는 것인가?"

"네, 그래요."

"자네들 그때 내게 혼배 성사 청할 때 예물은 얼마나 냈지?"

"미사 예물만 말예요? 아니면 성당 예식비 모두 포함해서 말입니까?"

"아, 그거야 당연히 다 합쳐야지."

"그럼, 그때 팔십 만원 드렸어요. 성당에..."

"팔십 만원이라...? 그 동안 물가도 오르고 또 이혼 성사라는 게 워낙 특수한 거라서 이번엔 한 팔백 정도 들겠는데...?"

"네, 좋아요. 신부님, 팔백 만원 낼 테니까 이혼시켜 주세요." 하고 기어이 신청을 했다.

금요일 저녁미사 후 한복을 차려입은 신부와 정장을 한 신랑을 제단 앞에 불러모으고 무릎을 꿇게 한 다음, 성수채로 신랑머리를 한 대 내리치며 "깨져라!" 하시더니, 이번엔 신부머리를 내리치며 "쪼개져라!" 하시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신랑과 신부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세게 내리 치시면서 "갈라져라, 헤어져라, 찢어져라!"를 반복하시더니 급기야 "뒈져라!", "죽어라!", "이 웬수야!"하고 험악한 말씀과 함께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신랑 신부가 성사를 베푸시는 신부님을 붙잡고 "아이고 신부님, 이러다 우리 죽겠습니다."하고 매달렸어요.

그러자 신부님, 태연하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죽으라고 그런다. 너희들 중 명 짧은 놈 먼저 하나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팰꺼다. 너희는 아직도 몰랐느냐?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혼인성사가 풀린다는 걸..."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혼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왜냐하면 혼인은 남녀의 인격적인 결합일 뿐만 아니라 혼인을 통하여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선 이야기의 신부님께서는 한쪽이 죽어야 이 결합이 풀어지기 때문이라면서 성수채로 죽을 때까지 때리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습들을 반성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백소에서 고백을 듣고 있으면, 누구를 미워한다는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남편, 자신의 부인, 자신의 자녀, 자신의 부모일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분명 사랑했기에 가족을 이루는데도 불구하고 그 미움의 마음을 가졌을 때가 가장 많았던 대상이 바로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인 경우가 많다는 것…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몸을 이루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진정한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움을 간직한다면 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물론, 한 몸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지요.

나는 과연 사랑을 이루고 있는가, 아니면 미움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움만을 간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한쪽이 죽을 때까지 맞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맞을 짓을 하지 맙시다.



아버지의 기도(인생의 지도, 이도환)

부친상을 당한 아들이 있었다. 그는 서재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서랍 속에서 표지가 낡고 색이 바랜 공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평소 아버지는 자정이 되도록 서재에서 책을 읽곤 했는데 때로는 새벽녘까지 서재에 계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계실까 늘 궁금해하곤 하였다.

아들은 공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아버지의 채취가 흠씬 풍겨나는 듯하여 다시금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겼다.

그 공책에는 아버지의 필체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가족들과 친지들의 이름, 친구들과 이웃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니 전혀 생소한 사람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아들은 그 공책을 들고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어머니는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듯 그 공책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어머니 또한 그 공책에서 아버지의 채취를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한참 후 아들은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남기신 이 공책에 대해 애기해 주세요.”

어머니는 그 공책을 한 장씩 넘기며 추억을 이야기하듯 말했다.

“이 공책은 아버지의 기도 공책이란다. 네 아버지는 매일 밤마다 이 공책 속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짚어가며 하느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단다.”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은 아들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아들은 공책에 적힌 낯선 이름들에 대해 어머니께 물었다.

“그런데 여기 적힌 이 사람들은 누군가요? 저는 모르는 이름들인데요.”

어머니는 낮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네 아버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름이란다. 네 아버지는 매일 밤마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지.”

아들은 다시금 눈앞이 뿌옇게 흐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아 참을 수 없고 화가 날 때는 눈을 감고 열 손가락을 헤아리십시오. 그래도 화가 날 때는 콩알을 갖다놓고 헤아리고, 그래도 화가 나면 모래를 한 줌 갖다가 헤아리고, 그래도 화가 나면 마음이란 정원에 나무를 심으십시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댓글 1

  • 2004년 8월 14일 오전 10:10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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