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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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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28,1-17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때는 시드키야가 유다 왕이 된지 얼마 안 된 제사년 오월이었다. 기브온 사람 아쭈르의 아들 하나니야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그는 주님의 성전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바빌론 왕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바빌론으로 약탈하여 간 내 집의 모든 기물을 이 년만 있으면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유다 왕 여호야킴의 아들 여고니야와 함께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유다인들도 모두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똑똑히 말해 둔다. 내가 바빌론 왕의 멍에를 부수리라.'" 예언자 예레미야는 사제들과 주님의 성전에 서 있는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예언자 하나니야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렇게만 하여 주신다면야 여부가 있겠소? 그대가 예언한 그 말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셔서 주님의 성전 기물과 포로들을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되돌려 오신다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소?" 예언자 예레미야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제 그대와 온 백성의 귀에 똑똑히 일러 줄 터이니 잘 들어 주시오. 예전부터 우리 선배 예언자들은 많은 지방과 강대한 나라에 전쟁과 기근과 염병이 있겠다고 예언하였소. '잘 되어 간다.'고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말이 맞아야만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인 것이 드러날 것이오." 그러자 예언자 하나니야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메었던 나무 멍에를 목에서 벗겨 부수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니야는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년만 있으면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모든 민족에게 메운 멍에를 내가 이렇게 부수리라." 그러자 예언자 예레미야는 자리를 떴다. 예언자 하나니야가 예언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 멍에를 벗겨 부순 후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너는 하나니야에게 가서, 주님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일러라.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었지만, 나는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겠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인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모든 민족에게 쇠 멍에를 메워서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리라.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 주리라.'" 예언자 예레미야는 예언자 하나니야에게 그대로 일렀다. "하나니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그대를 보내지 않으셨는데, 그대는 이 백성에게 거짓말을 하여서 곧이듣고 안심하게 하였소.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나는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겠다. 나를 거역하는 말을 한 벌로 너는 이 해가 가기 전에 죽으리라.'" 그 말대로 예언자 하나니야는 그 해 칠월에 죽었다.
복음 마태오 14,13-21 그때에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시고 거기를 떠나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러나 여러 동네에서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육로로 따라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 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 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이르셨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을 풀 위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 가량 되었다.
아주 재미있는 설문 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설문에 한번 응해보십시오. 단, 여성분들만 이 설문에 응답해야 하네요. 남성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번에는 남성들을 위한 설문을 준비하지요…….
<당신의 아줌마 정도는?>
1. 리모콘을 부여잡고 잠든 적이 있다.
2. 드라마를 보다가 울어본 적이 있다.
3.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4. 설거지 할 때 트로트를 부른다.
5.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보면 어느새 앉아 있다.
<결과보기>
0개: 집안 일 좀 하세요. 감성이 메마른 그대 사랑하며 삽시다.
1~2개: 아줌마니즘의 시작 단계. 서서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단계. 생존 법칙과 힘의 법칙 사이에서 방황할 시기. 졸업을 앞두셨군요.
3~4개: 혼자서도 잘해요. 집에서 지내는 것에 탄력이 붙은 그대… 웃으며 일하는 당신이 사랑스럽습니다.
5개: 그대를 아줌마로 임명합니다.
왜 ‘당신의 아저씨 정도는?’이라는 설문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의 설문을 보면서, 저 역시 아줌마니즘에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2번을 빼놓고는 거의 해당되거든요. 하긴 2번의 경우도 밤에 깨어있지 못하는 저의 특성 상 밤늦게 하는 드라마를 보지 못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5개의 설문 내용이 제게 속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요즘에는 예전처럼 ‘학생~~’이라고 불림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네요. 대신 거의 100% ‘아저씨’라는 불림을 받고 있습니다. 하긴 제가 거울을 봐도 아저씨 같다는 생각이 떨칠 수가 없네요.
하지만 그만큼 지금의 내 일에 충실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학생의 일이 아닌, 아저씨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저씨가 되기 싫다고 하더라도, 성지를 개발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아저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의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 편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셨지요.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측은한 마음으로 봐주시는 것은 물론 그들의 아픔을 직접 해결해주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드러내면 더 편하게 세상에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보다는 우리들과 똑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시면서 힘들게 생활하십니다. 이로써 인간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지요. 즉,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우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배고파하는 군중들을 위해서 빵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내가 먼저 기준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나를 드러낼 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자기만족? 그런데 이것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얼마나 큰 손해일까요?
아줌마, 아저씨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이 모습을 주님께서 원하시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자랑스런 아줌마, 아저씨가 됩시다.
내 마음도 내가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공자에게 안회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제자가 32살로 세상을 떠날 때에 공자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땅을 치며 울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있을 때의 일입니다.
먼길을 여행하는데 양식을 구하지 못한 공자 일행은 근 일주일이나 굶었습니다.
안회는 사방에 다니면서 식량을 구해와 밥을 지었습니다.
그 냄새가 너무도 좋아서 공자는 안회가 밥을 짓는 곳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안회가 솥뚜겅을 열더니 속으로 '아,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내가 인의예지를 그토록 가르쳤는데 제가 먼저 먹어?'라며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래서 은근슬쩍 그런 내색을 비추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안회는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솥뚜껑을 열고 보니까 얻어온 쌀이라서 그런지 수수가 몇 알 섞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밥을 스승님께 드릴 수도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제가 그것을 골라 먹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고,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 때에 그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때때로 믿어서는 안될 때가 있다. 또 마음을 의지하고 살지만 내 마음도 내가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아니, 믿어서는 결코 안될 때가 있다."
잊지 말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내 의견은 옳고 남의 의견은 틀렸다는 것입니까?
믿을 만한 눈도 믿을 것이 못될 때가 있습니다.
내 판단, 내 지식, 내 마음도 더더욱 믿을 수 없을 때가 있기에 온유한 마음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