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열며(04,07,31)-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2004. 7. 31. 오전 10: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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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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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26,11-16. 24
그 무렵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고관들과 온 백성 앞에 예레미야를 고발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으신 대로 이 사람은 이 성이 망한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들과 백성 앞에서 입을 열었다. "나는 주님께 사명을 받고 온 몸이오. 여러분도 다 들으셨겠지만, 나는 그분의 분부대로 이 성전과 이 성읍이 어찌 될 것인지를 전하였을 뿐이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생활 태도를 고치시오. 그렇게만 하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실 것이오.
나는 여러분의 손 안에 있소. 그러니 여러분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시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책임을 져야 하오. 이 성과 이 성의 시민이 책임을 져야 하오. 나는 틀림없이 주님께 사명을 받고 온 몸으로서 이 모든 말을 여러분에게 전하여 주었을 뿐이오."
이 말을 듣고 고관들과 일반 민중은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을 만한 죄가 없소. 이 사람은 우리 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했을 뿐이오."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캄이 편을 들어 주어서 백성의 손에 죽지 않게 되었다.


복음 마태오 14,1-12
그때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왕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신하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일찍이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그 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중학생 때의 일입니다. 친구들과 집에 가는데 길에서 돈을 주웠습니다. 학생의 신분으로는 꽤 큰돈이었지요. 저는 순간적으로 갈등을 했습니다. 경찰서로 가서 돈을 주웠다고 신고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돈 같았고요. 그렇다고 이 돈을 제 주머니에 넣는다는 것도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런 제게 친구들은 공돈이 생겼는데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빨리 한턱내라고 말합니다.

결국 저는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 사고, 오락실에 가서 오락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다보니 주운 돈은 이미 다 썼고요, 무엇인가를 사기위해서 모아둔 돈까지도 오락하는데 다 쓰고 말았지요.

분명히 돈을 주웠는데, 그 돈이 제게 이득을 준 것은 하나도 없었지요. 우선 남의 돈을 내가 함부로 썼다는 마음의 가책을 가져다주었고요, 제가 사기 위해 모은 돈까지 써버리는 물질적인 손해까지 입은 것이지요.

내 것이 아닌 것을 소유하려 할 때, 그 당시에는 내게 큰 이익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물질적인 이득이 돌아올지는… 그러나 마음으로 손해가 가득이라면 그 모든 물질적인 이득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는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재혼을 합니다.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기에 행복할 것 같아서 그런 부도덕한 행동을 했겠지만, 그는 그 과정 안에서 너무나 많은 죄를 지음으로써 오히려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자, 자기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하면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헤로데. 하지만 늘 불안 속에 떨고 있는 그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단일회적인 물질적인 소유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 마음이 들수록 행복은 내게서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처다 보지도 맙시다.



당신은 어느 쪽이십니까(엘러 휠러 윌콕스)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단지 두 부류의 사람들뿐, 더는 없어요.
죄인과 성자는 아니에요.
잘 아시다시피 선한 이에게도 나쁜 점이,
나쁜 이에게도 좋은 점이 있지요.

부자와 가난뱅이도 아니죠.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 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 같은 세월 속에 누구나 웃을 때도 있고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을 드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

어딜 가든 보게 될 거예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늘 이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는 걸
그리고 참으로 이상한 일은 내 생각엔
기대는 자가 스물이라면
짐 드는 사람은 하나뿐이지요.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길을 가는 이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 지우고 걱정과 근심을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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