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열며(04,07,30)-연중 제17주간 금요일

2004. 7. 30. 오전 10: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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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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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26,1-9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주님이 말한다. 너는 내 집 마당에 가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내 집에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에게 전하라고 준 말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일러 주어라.
행여나 이 백성이 내 말을 듣고 그 못된 생활 태도를 고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만 한다면, 재앙을 퍼부어 그 악한 소행을 벌하려던 계획을 나는 거두리라.
너는 주님의 말이라고 하며 이렇게 일러 주어라. '내 말을 따라 살아라. 내가 세워 준 법대로 살아라. 내가 거듭 거듭 보내는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이 집을 실로처럼 만들리니, 이 성읍은 세상 모든 민족에게 욕을 먹게 되리라."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일반 민중은 예레미야가 주님의 성전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다 들었다.
예레미야가 주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 국민에게 전하자,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일반 민중이 예레미야를 붙잡고 말하였다.
"이 죽일 놈아!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을 빌려 이 성전이 실로처럼 되고 이 성읍이 허물어져 사람이 못 살게 된다고 하느냐?" 그러면서 온 백성이 주님의 성전으로 모여들어 예레미야에게 다가섰다.


복음 마태오 13,54-58
그때에 예수께서 고향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며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 하면서 예수를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





연인에게 들으면 속상한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한번 잘 들어보시고, 공감이 가는지 한번 확인을 해주세요.

1. 무더운 여름날, 한창 드라이브를 즐기는데 분위기를 깨는 그녀의 말, “차 안이 왜 이렇게 후덥지근해. 내 친구 애인 차는 에어컨도 시원하던데.”

2. 며칠 동안 손까지 다쳐 가면서 정성 들여 깎은 나무 조각상을 생일 선물로 주었더니 “빈티 나 보여”라며 실망하는 그녀.

3. 다짜고짜 전화해서 “나 오늘 약속 취소 됐어” 하며 빨리 나오라는 그녀. 내가 뭐 심심풀이 땅콩인가요?

4. 여자친구가 고기를 사 달라는데 마침 용돈이 바닥나 머뭇거렸어요. “너 돈 없지?”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기 하나 사 주지 못하는 제 처지가 정말 슬펐습니다.

5. 남자친구 앞에서 조금 느슨한 모습으로 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나 아니면 누가 너랑 사귀겠냐?” 왜 이래, 너 말고도 나 좋다는 사람 많다고!

6. 바닷가에 앉아 어깨를 기대고 분위기를 한껏 잡는데 대뜸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 남자친구. “너 살찐 것 같다.”

7. 회사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투정을 부리는 내게, “그럴 만하니까 야단맞았겠지”라고 말한다. 빈말이라도 내 편이 되어 주면 어때서…….

8. 걱정스러운 일이 있는 것 같아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말해 주면 네가 알아?”하고 쏘아붙일 때. 나는 그저 힘이 되어 주고 싶을 뿐인데…….

사실 연인뿐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을 들으면 결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들은 이렇게 들으면 속상한 말을 너무나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런 변명을 하곤 합니다.

“나는 아무런 뜻 없이 한 말이야. 왜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러면서 따지는 사람에게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면서 상대방의 속 좁음을 탓했던 것은 아니었나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신 이런 말로써 예수님을 받아들이지요.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들으신 뒤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 고향 사람들에게도 하느님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써 힘을 주시려고 하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 오히려 상처가 되는 말로써 응답하고 있습니다.

말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다시 점검하여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말은 주님처럼 다른 이에게 힘이 되는 말인가? 아니면 고향 사람들처럼 상처를 주는 말인가요?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합시다. 특히 격려의 말을…….



'겸손'과 '양보'를

어느 날 두 사람이 스위스의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두 마리의 염소가 매우 좁은 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염소들은 다리의 중간에서 오도 가고 못했습니다. 곧 한판 싸움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하게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마리가 염소의 등을 밟고 유유히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분쟁이 없습니다.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수는 바로 '교만'입니다. 반대로 모든 관계를 친밀하게 만드는 비결은 '겸손'과 '호의'일 것입니다.

마빈 토케이어가 편집한 탈무드에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현명한 어머니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내 딸아! 만약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다룰 것이다. 그러나 네가 노예 여자처럼 행동하려고 하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룰 것이다. 만약 네가 너무 자존심이 높아서 그에게 봉사를 게을리 한다면 그는 너를 하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만약 남편이 그의 친구를 방문할 때는, 그를 목욕탕에 들어가게 해서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여 방문토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항상 가정에 신경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소중하게 해라. 그는 기뻐서 너의 머리 위에 관을 바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낮춤으로 높아지는 하늘의 비의(秘意)를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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