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열며(04,07,28)-연중 제17주간 수요일

2004. 7. 28. 오전 9: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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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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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15,10.16-21
"아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나라 사람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 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진 일이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사람마다 이 몸을 저주합니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는 받아 삼켰습니다. 만군의 주 하느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 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에 흐뭇하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웃으며 깔깔대는 자들과 한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을 돌려 잡아라. 나는 다시 너를 내 앞에 서게 하여 주겠다. 그런 시시한 말은 그만두고 말 같은 말을 하여라. 나는 너를 나의 대변자로 세운다.
백성이 너에게로 돌아와야지 네가 백성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내가 너를 그런 놋쇠로 든든하게 만든 성벽처럼 세우리니, 이 백성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너를 꺾지 못하리라.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너를 도와 구하여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나는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주며 악한들의 손아귀에서 빼내 주리라."


복음 마태오 13,44-46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장님이 절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젊은이가 달려가 장님의 팔을 잡고 말했습니다.

“그쪽으로 계속가면 절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자 장님이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만 둬. 이제까지 모두들 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나를 속이고 모든 것을 빼앗았어. 그런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나? 나는 이제 아무도 믿지 않아.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꺼야.”

젊은이의 호의를 장님이 무시하는 이유는 바로 이제까지 자신을 아무도 옳은 길로 인도해주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교만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혼자 살 수가 없는 것이지요. 바로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이 세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앞선 장님처럼 남들이 내게 무엇을 해주었냐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집과 교만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지요? 바로 내 앞에 절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과 교만으로 그 절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둔함을 간직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지혜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낸 사람이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처럼, 그리고 좋은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이 있는 것을 다 팔아 진주를 사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요?

얼마 전에 목욕탕에 간 적이 있습니다. 샤워를 한 뒤에 온탕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물이 너무나 미지근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옆에 있는 열탕으로 들어갔지요. 발을 담그는 순간, 저는 너무나 뜨거워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탕 위에 적혀 있는 온도를 보았지요. 온탕의 온도는 38℃, 열탕의 온도는 42℃ 였습니다. 겨우 4℃의 차이로 인해서 저는 뜨겁고 미지근하다는 판단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노력도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겨우 4℃의 차이지만 느끼는 것이 다른 것처럼, 우리들이 어떤 노력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나에게 주어지는 성과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기에 주님께 대한 기도까지 포함된다면 어떨까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더 큰 효과를 얻겠지요?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왜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실까요? 바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더 이상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어리석음을 선택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4℃만 더 노력합시다. 분명히 큰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박성철, ‘소중한 오늘을 위하여’ 중에서)

슬픔뿐이라 해도

거센 폭풍우로 인해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꺽인다해도 나무는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와도 자신의 삶의 근원인 뿌리만은 어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 몸이 움푹 해이는 상처투성이 아픔뿐일지라도

그 폭풍우가 지난 후엔 다시 푸르게 자라날 튼튼한 뿌리가 있기에 나무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절망을 대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못된다 해도 절망에 무릎꿇는 청춘은 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절망이 찾아왔다는 것은 다음에는 절망보다 희망이 찾아 올 확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십시오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꽃은 비록 외양은 아름다울지 모르나 거센 바람을 이겨낸 꽃처럼 짙은 향기를 뿜지는 못합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아픔과 슬픔뿐이라해도 절망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세상이 그대에게 선물한 여덟 자의 축복을 사랑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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