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열며(04,07,26)-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

2004. 7. 27. 오후 12: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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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6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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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13,1-11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모시 잠방이를 하나 사다가 허리에 걸치고 물에 적시지 않도록 하여라." 주님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나는 잠방이를 사서 허리에 걸쳤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또 나에게 이르셨다. "네가 사서 허리에 걸친 잠방이를 벗어 들고 브랏으로 가서 바위 틈에 숨겨 두어라." 나는 주님께서 내린 분부대로 브랏으로 가서 그 잠방이를 거기에 숨겨 두었다.
오랜 시일이 지난 다음,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이제 떠나 브랏으로 가서 내가 시킨 대로 숨겨 두었던 잠방이를 가져오너라." 나는 브랏으로 가서 숨겨 두었던 자리를 파고 잠방이를 꺼내 보았더니, 그 잠방이는 썩어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와 같이 유다의 거만과 예루살렘의 엄청난 거만을 꺾어 버리겠다. 이 몹쓸 민족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희의 악한 생각을 굽히지 않고 멋대로 살아왔다. 다른 신들을 따라다니며 섬기고 예배하였다. 그래서 이 백성은 잠방이처럼 되어 아무 쓸모도 없게 될 것이다.
허리에 잠방이를 단단히 걸치듯이 나는 이스라엘의 온 가문과 유다의 온 가문을 나에게 꼭 매어 두려고 했었다. 내 말이니 잘 들어라. 그렇게 되었다면 이 백성은 내 백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이름을 빛내고 나에게 영광과 영화가 돌아오게 하였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복음 마태오 13,31-35
그때에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겨자씨를 뿌렸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나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온통 부풀어올랐다. 하늘 나라는 이런 누룩에 비길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군중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내가 말할 때에는 비유로 말하겠고 천지 창조 때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헨델은 젊었을 때 이발사의 딸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 의 악보를 선물로 주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녀는 그 악보를 받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초조해진 헨델은 직접 찾아가지요. 그리고 '메시아' 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할렐루야 코러스' 에 대해 이야기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헨델이 이발소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습니다. 사랑스런 그녀를 계속해서 보기위해 헨델은 구석에 숨어 그녀를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가 머리를 다 자르고 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소리쳤답니다.

"아버지, 헨델씨의 악보 몇 장만 찢어다 주세요. 머리카락 쓸어 담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메시아라는 곡이 이렇게 천대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사실 음악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악보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이발사의 딸에게는 훌륭한 음악의 악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 다른 종이와 똑같다고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마치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해준 것이지요.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이 이발소의 딸과 같은 모습을 취했습니다. 즉,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 언젠가는 과거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치하에서 누렸던 그 영광을 다시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를 6~70미터 이상 자라는 레바논의 커다란 삼나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삼나무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는 이 겨자씨와 같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싫어하는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사실 이 겨자씨는 급속하게 퍼져서 다른 채소에 피해를 많이 입혔거든요. 그래서 밭에 뿌리지 못하는 금지 목록에 있는 씨였습니다. 또한 다음에 나오는 누룩 역시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 누룩은 부패의 상징으로 일상생활에서 불결한 것을 나타냈었거든요.

이처럼 부정한 것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거룩한 것에만 주님께서 계신다는 착각과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상 안에서도 주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려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안에서 은밀하게 드러납니다. 나의 가족 안에서, 나의 친구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이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깁시다. 주님께서 만든 것 중에 필요없는 것은 없습니다.



발리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5가지 이유

세계에서 자기가 사는 곳에 제일 만족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발리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발리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 지상에서 가장 천국과 같은 곳임을 느끼며 살기에 신혼여행을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발리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 이 섬은 큰 산업 시설이나 재미있는 오락시설도 없는 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①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We have nothing)

② "우리는 단순하게 삽니다."(Our life is simple)

③ "우리는 서로 좋아합니다."(We like each other)

④ "우리는 먹을 것이 충분합니다."(We have enough to eat)

⑤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섬에서 만족하게 살고 있습니다."(We live and have a satisfaction on a beautiful island)

댓글 1

  • 2004년 7월 27일 오후 1:03

    좋은 글 올리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게시판 성격과는 조금 맞지 않았는데, 아예 게시판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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