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 (04. 08. 04)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2004. 8. 4. 오전 10: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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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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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31,1-7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때가 되어야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부림에서 빠져 나온 백성이 사막에서 나의 은혜를 입었다. 안식처를 찾아 나선 이스라엘에게 나 주님이 멀리서 나타나 주었다. 나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여 너에게 변함없는 자비를 베풀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다시 세워 주리라. 너는 다시 일어서서 몸치장을 하고 소구를 치며, 흥겹게 춤추며 나오게 되리라.
사마리아 이 산 저 산에 다시 포도를 심고, 심은 사람이 그 포도를 따 먹게 되리라.
'시온으로 올라가 우리 주 하느님을 뵙자!' 고 보초들의 외치는 소리가 에브라임 산에서 터져 나올 날이 왔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환성을 올려 야곱을 맞이 하여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해 주셨네.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을 구해 주셨네.' 종주산 위에서 이렇게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복음 마태오 15,21-28
그 무렵 예수께서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이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으니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2년에 한 번, 그것도 단 두 마디의 말밖에는 하지 못하게 하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 들어간 어떤 수도자가 맨 처음 2년을 채우고 드디어 두 마디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요. 그는 원장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침대, 딱딱하다.”

그리고 그 수도자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다시 2년의 세월이 또 흘렀고 젊은 수도자는 또 두 마디의 말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다시 원장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지요.

“식사, 맛없다.”

다시 2년의 세월이 지난 뒤 젊은 수도자는 또다시 두 마디의 말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짐을 꾸려들고 원장 앞에 나타났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간다.”

이렇게 수도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그의 등에 대고 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2년간 참았다가 할 수 있는 귀중한 두 마디의 말을 그대는 모두 불평과 불만을 말하는데 써 버리지 않았나? 그러니 견딜 수 없지.”

이 글을 보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에 대해서 생각하여 봅니다. 물론 저는 하루에도 수천마디의 말을 하고 있는데요. 과연 어떤 말을 쓰고 있었는지를 말이지요. 긍정적인 말일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말일까요?

앞선 이야기에서는 바로 이렇게 말의 소중함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즉, 그토록 소중한 말을 우리들은 어떤 방향으로 쓰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한 이방민족의 여인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면서 무시를 하십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제자들도 “저 여자를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면서 청을 거절하시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계속 도와달라는 여인의 청에 이번에는 깊은 상처가 될 만한 말씀을 하시지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말을 여러분이 직접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저 같으면 욕한 마디 거하게 하고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 여인은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부정적인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한 믿음을 보여주는 말을 하게 되지요. 그 결과 여인의 소원인 딸은 치유의 은총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어떤가요? 혹시 예수님 옆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그 제자들처럼 남에 대해서 판단하는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끝까지 주님께 매달려서 강한 믿음의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있나요?

나와 우리를 살리는 말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오늘 복음이 아닌가 싶네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말이 남 이야기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서 나한테 어떤 이득이 올까요? 남을 죽이는 말이 아닌, 살리는 말을 하도록 합시다.



약속은 지킴으로 고귀하고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하룻밤 숙박 예정으로 말을 타고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시골길을 지나다가 7-8세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 아이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 아이는 톨스토이가 가지고 있는 백합꽃 수가 놓인 가방을 보자, 그것이 부러워 어머니에게 졸라대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는 그 아이가 졸라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가 되돌아와서는 소녀에게 약속을 했다.

"내일만 지나면 이 가방이 필요 없게 되므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틀림없이 너에게 줄 터이니 울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가방은 친지의 유품인 소중한 기념품이었으나 톨스토이는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약속을 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저녁 어김없이 그 시골길로 돌아와 소녀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 소녀는 불행하게도 톨스토이와 헤어진 후 급한 병으로 죽게 되어 조금 전에 장례식을 끝낸 뒤였다. 톨스토이는 소녀의 모친에게 부탁하여 소녀의 묘지까지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가방을 무덤 앞에 놓고 엄숙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소녀의 모친은 눈물을 닦으면서 톨스토이에게 말하기를 "이제 아이는 죽었으니 이 가방은 가지고 가라."고 미안한 듯이 말하자, 톨스토이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따님은 죽었으나 소녀와의 약속은 나의 마음에 아직 죽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을 배반하고 싶지 않습니다."하고는 머리를 숙였다는 것이다.

"하잘 것 없는 약속이라도 정확하게 지키면 신용은 물론이고 인기가 올라갈 것이니 힘에 미치지 못하는 약속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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