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 (04. 08. 05)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2004. 8. 5. 오후 3:26:13

글자

2004년 8월 5일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재생 클릭!!


제1독서 예레미야 31,31-34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주님이 말한다. 이 새 계약은 그 백성의 조상들의 손을 잡아 이집트에서 데려 내오던 때에 맺은 것과는 같지 않다. 나는 그들을 내 것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나와 맺은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귀담아들어라. 그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 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주님의 심정을 알아 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복음 마태오 16,13-2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나?"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꾸짖으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혹시 에스키모들의 늑대 사냥 법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잡을 때 예리한 칼끝에 동물의 피를 묻히곤 이를 칼끝이 밖으로 향하게 꽂아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와서 그 피를 핥아먹는다고 해요. 그런데 피를 핥다 보면 늑대는 자신의 혀를 베게 되겠지요?

맞습니다. 그때부터 늑대가 핥는 것은 다른 동물의 피가 아닌 바로 자신의 혀에서 흘러나오는 피 입니다. 하지만 늑대는 자기 피를 자기가 핥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합니다. 배를 채우는 데 정신이 팔려 그런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피를 핥고……. 그러다 결국 기운을 잃고 서서히 죽어 갑니다. 물론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채로 말입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늑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순간 전율이 일더군요. 왜냐하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다 목숨을 잃고 마는 늑대의 모습과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작은 이익이라도 덥석 물고 마는 인간의 어리석음들…….

사실 저 역시 이 어리석음에서 완전하게 해방되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겠더군요. 특히 요즘 성지의 공사를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더 강하게 든답니다. 괜히 인간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종종 이런 유혹이 생깁니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겠니? 그냥 대충 대충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돈 좀 팍팍 내라는 말만 열심히 하라고……. 그래야 빨리 아름다운 성지를 만들 수 있을 것 아냐?”

그리고 이런 유혹으로, 점점 더 주님께 의지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간직하게 되네요. 마치 자기의 피를 핥아 먹으면서 기운을 잃어가는 늑대처럼, 주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사람들의 예수님 평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이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질문을 던지세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답합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원하셨던 대답이었고, 가장 맘에 들은 대답이셨지요. 그래서 베드로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이번에는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이 말에 무척이나 실망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사탄아, 물러가라'면서 아주 심한 말씀을 하시지요.

나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 보시기에 칭찬받을 행동을 하며 사는지, 아니면 어떤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서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것들로 걱정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행동은 아니었을까요?

"사탄아, 물러가라."

이 말씀이 나에게 울려 퍼지는 말씀이 되지 않도록 주님께만 무조건 의지할 것을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께 의지하세요. 분명히 도와주십니다.



농부의 감사(‘인생의 지도’ 중에서, 이도한)

도시에서 학문을 어느 정도 닦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 시골에 사는 농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농부는 새벽부터 종일 부지런히 밭에 나가서 일했고 도시 사람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농부는 고도니 하루를 마친 뒤에 도시 사람과 식탁을 마주하였다. 농부는 준비된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도시 사람이 농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하루 종일 바깥에서 직접 수고해서 먹을 것을 마련하였는데 어째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 겁니까? 당신이 이 정도의 생활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신에게 감사해 하는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농부가 도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농장에는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놈이 있소이다. 그놈이 바로 돼지라는 놈이오. 그 놈은 주인인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도 당연하게 생각할 뿐 전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줄을 모른다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