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8,16) -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2004. 8. 16. 오전 10: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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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6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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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키엘 24,15-2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네가 보기만 해도 기뻐지는 네 사랑을 내가 이제 갑자기 앗아 가더라도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곡하지 마라.
슬퍼하되 소리는 내지 말고 곡도 하지 마라. 여느 때처럼 수건을 머리에 감고 신을 신어라. 수염을 가리거나 상가 음식을 차려 먹거나 하지 마라."
나는 다음 날 아침,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날 저녁에 나의 아내가 죽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분부받은 대로 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나의 행위가 자기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 뜻을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백성에게 일러 주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내리셨소. '이스라엘 족속에게 일러라. 주 하느님이 말한다.
너희는 나를 섬기던 성소를 그것이 힘이 된다고 자랑하였고 보기만 해도 즐거워진다면 정을 붙였지만, 나 이제 그 성소를 욕되게 하리라. 또 너희가 버리고 간 너희 아들딸들을 칼에 맞아 쓰러지게 하리라.
그때가 되면 나처럼 해야 한다고 나는 백성들에게 일러 주었다. 수염을 가리지 말고 상가 음식을 차려 먹지 말며 여느 때처럼 수건을 머리에 감고 신을 신어야 하며 가슴을 치면서 곡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망하는 줄 알고 서로 하소연이나 하라고 일러 주었다.
이 에제키엘이 너희의 상징이다. 너희는 그가 하는 대로 하여라. 이 말이 맞거든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아라.'"


복음 마태오 19,16-22
그때에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하고 대답하셨다.
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증언 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 젊은이가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다시 묻자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ㅔ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 남부 지방의 백인으로 태어난 존 그리핀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된 뒤 흑인들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흑인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피부 색깔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핀은 그렇게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약품과 염료, 방사선을 이용하여 자기의 피부를 검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국 그의 피부는 검게 변했지요.

그리고 그는 흑인들만이 사는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때는 1959년으로, 이 당시 인종차별을 받던 미국 남부 흑인들의 생활은 무척 참혹했지요. 따라서 그는 목이 말라서 물을 먹을 때에도 흑인들만이 먹게 되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마셔야 했고, 화장실을 사용할 때에도 ‘흑인 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은 화장실을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많은 고난과 위험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때도 있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흑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했고 또한 그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데 최선을 다했지요.

그리핀은 60세가 되어서 피부암으로 죽습니다. 그의 병은 피부를 검게 하려고 사용했던 약품과 염료 그리고 방사선으로 인한 결과였지요. 그는 이렇게 자기의 신념을 위하여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똑같아 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외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100%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허구인가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외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시고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인간들이 받는 고통 이상으로 많은 시련과 아픔을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입으로는 그런 체험을 하고 싶다고는 말하면서, 그래서 주님과 하나 되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행동으로는 똑같아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제 당신을 쫓아다니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께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산을 차마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전적인 신뢰가 아직 없기에 그는 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주님을 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주님과 얼마나 하나를 이루고 있나요? 아니 그 하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나요? 부자 청년처럼 세속적인 것을 놓지 못해서 풀이 죽어 돌아가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주님의 명령에는 곧바로 응답하는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욕심, 조금만 줄여봅시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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