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8,24)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2004. 8. 24. 오전 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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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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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묵시록 21,9ㄴ-14
천사가 나에게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인 그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대문이 있었고 그 열두 대문에는 천사가 하나씩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 자손 여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그 대문은 동쩍에 셋, 북쪽에 셋, 남쪽에 셋, 서쪽에 셋이 있었습니다.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주춧돌이 있었는데 그 주춧돌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하났기 적혀 있었습니다.


복음 요한 1,45-51
그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물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권하였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타나엘이 예수께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나타나엘은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딸만 6명인 어느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로부터 예쁜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는 6명이고 인형은 하나라서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엄마는 고민 끝에 말했습니다.

“오늘 제일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 이 인형을 주겠다.”

그 말을 듣자 여섯 딸이 하나같이 소리쳤습니다.

“에이! 그러면 아빠 거잖아!”

엄마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이 아빠라면, 이 아빠는 공처가인가요? 아니면 애처가인가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빠들은 이 공처가, 애처가 소리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남자 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아빠의 이런 모습들이 바로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게 하는 기틀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요. 따라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남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싸움이란 것도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 안에서의 다툼 역시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데서 시작되는 것이지요.

주님과의 거리감을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과연 어떤 때였나요? 바로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또한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대화가 없었던 시기가 가장 거리감을 느끼게 된 순간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말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요?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가 나타니엘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전해줍니다. 그런데 필립보가 전해주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나자렛이라는 촌구석이 아니라, 유다 지역의 다윗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나타니엘은 다소 성격이 급한 친구가 앞 뒤 가리지 않고 흥분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지만 나타니엘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구세주이심을 곧바로 고백하게 됩니다.

비록 설마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떤 확신이 들은 후에는 곧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나타니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잘 인정하지 못하지요. 내 위신이 꺾일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줏대 없는 사람으로 평가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타니엘은 달랐습니다. 나타니엘은 비록 친구에게 퉁명하게 말하면서 예수님을 우습게보았지만, 예수님의 진면목을 바라본 뒤에는 자신의 의견을 뒤집어 말을 하지요.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리를 쫓는 나타니엘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께서는 나타니엘이 오시는 것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주님을 알아 뵙는 나타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과 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만큼 하고 있나요? 얼마나 성호를 그으면서 대화의 시작을 열고 있나요?

오늘만큼은 주님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분을 더 많이 알기 위해…….


하루에 10번 이상 성호를 긋도록 합시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그림 감상해보세요 - '하늘 가는 길' Cafe의 신비님 글)

내가문밖에서서두드리노니


이 그림속 문에는 손잡이가 없답니다.(-.-)!

이 문을 열수 있는 사람은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이라고 해요.

하느님은 사랑으로 방문하실때도 이렇게

문밖에서 노크를 하신답니다.

" 나 예수야, 너의 마음속에 좀 들어가도 되겠니?" 하고 말에요.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시지 마시고 내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 드려야 겠죠?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배려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가득히 볼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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