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8,22) - 연중 제21주일 다해

2004. 8. 22. 오후 1: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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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2일 연중 제21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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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66,18-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가서 다른 말을 쓰는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오리라. 그들은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그들 가운데 난을 면할 자들에게 표를 주어 다르싯, 풋트, 룻, 모섹, 로스, 두발, 야만 등 여러 민족들, 나의 소문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내어, 만방에 나의 영광을 전하게 하리라.
그들은 민족들 가운데서 너희 모든 겨레를 말과 수레와 포장마차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 데려다가 선물로 주님에게 바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한 그릇에 선물을 담아다가 주님의 성전에 바치듯이 바칠 것이다. 주님이 말한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뽑아 세우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제2독서 히브리서 12,5-7.11-13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마치 자녀들에게 하시듯이 여러분에게 격려하신 말씀을 잊었습니까? "아들아, 너는 주님의 견책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꾸짖으실 때에 낙심하지도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견책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여기고 하시는 것이니 잘 참아 내십시오. 자기 아들을 견책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슨 견책이든지 그 당장에는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책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맺어 올바르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힘없이 늘어진 손을 쳐들고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그리고 바른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절름거리는 다리도 뒤틀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될 것입니다.


복음 루가 13,22-30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영세를 받기 위해서는 예비자 교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영세 받기 전에 무엇을 하지요? 주임 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 찰고라는 것을 하지요. 즉, 그 동안 얼마나 교리를 잘 배웠는지를 몇 가지 물어보십니다.

어느 본당 신부님께서 영세 전에 이 찰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은 항상 똑 같은 질문, 두 가지를 하셨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가?"이고,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서 돌아가셨는가?"였지요.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지요. 첫 번째 질문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라고 답해야 하겠고요, 두 번째 질문에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라고 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비자 반을 담당했던 수녀님께서는 자기 반에서 기억력이 부족하고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녀님께서는 몇 번에 걸쳐서 두 가지 문제의 답을 가르쳐 드렸지요.

드디어 주임신부님의 찰고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주임 신부님의 집무실에 들어가서 찰고를 받았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 문제의 할머니 차례가 되었어요. 주임신부님께서는 할머니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할머니, 예수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너무나 긴장을 하셨는지 그만 수녀님께서 가르쳐주신 답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었지요.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수녀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신부님 머리 위에 있는 십자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십자가는 보지 못하고 수녀님의 그 모습만을 지켜보고는 신부님께 자신 있게 말합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노망드셔서 돌아가셨나봐요."

신부님은 어의가 없었지요.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까?" 하지만 이 할머니는 이 질문도 답할 수가 없었어요. 수녀님께서는 또 힌트를 주기 시작하셨지요. 수녀님께서는 당신의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당신의 가슴을 가리켰지요. 즉,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런 눈치가 없으신 할머니는 가슴을 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르치는 수녀님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예수님은요. 저 우리 수녀님 때문에 돌아가셨나봐요."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답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신부님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했지요. 연세 많으신 할머니니까 좀 봐드리고 싶어도 너무 모르시니까 신부님께서는 마지막 기회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하셨습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머니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셨대요. "이 늙은이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너무나 고마우신 분이지. 이렇게 죄 많은 나이지만, 예수님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네. 따라서 내가 희망을 둘 수 있는 유일한 분이야."

아무튼 마지막 질문의 답 때문에 이 할머니는 세례를 받으실 수 있었다고 하네요.

오늘 복음에서 누군가가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또한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문 좀 열어 달라고 청하더라도,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고 하면서 외면할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외면 받지 않기 위해서, 또한 그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힘이라는 것은 앞선 할머니와 같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하느님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이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한 힘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억한다고 해서 좁은 문에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그 할머니처럼 아무 것도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희망을 둘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믿음, 그래서 나의 주님이라는 굳은 믿음, 이것이 바로 구원의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우리들의 변화를 예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지만,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의 변화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요? 혹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뭐.’ 이런 안일한 마음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들은 아닐까요?


굳은 믿음을 갖고 나의 근심과 걱정까지도 주님께 맡깁시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되십시오(발타자르 그라시안, 피자 열아홉 조각으로 지은 집)

무엇이 되든 가장 좋은 것이 되십시오

그대 만일 언덕 위에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섶나무가 되십시오.
그러나 냇가의 가장 좋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십시오.
만일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보기 좋은 관목이 되십시오.

그대 만일 관목이 될 수 없다면 작은 풀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길가를 보다 아름답게 만드십시오.
만일 그대가 꼬치고기가 될 수 없다면 농어가 되십시오.
그러나 호수에서 가장 팔팔한 농어가 되십시오.

우리들 모두가 선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선원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에게 무언가 할 일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대 만일 큰 길이 될 수 없다면
아주 작은 오솔길이라도 되십시오.

그대 만일 태양이 될 수 없다면 별이 되십시오.
실패와 성공은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되든 가장 좋은 것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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