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8,27) - 성녀 모니카 기념일

2004. 8. 27. 오전 1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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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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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1,17-25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성서에도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 버리고 똑똑하다는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하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고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또 이 세상의 이론가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복음 마태오 25,1-13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그 가운데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소리에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기었다.
미련한 처녀들은 그제야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것을 나누어 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그 뒤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 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신랑은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며 외면하였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얼마 전, Radio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자동차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커다란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아들은 중상을 입었지요. 사람들은 빨리 병원으로 옮겼고, 외과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들의 생명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그 병원의 외과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이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차마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숨을 거두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Radio에서는 이 문제의 답을 아시는 분은 전화를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첫 번째 전화 접속을 하신 분은 그 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넌센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답은 '어머니'였습니다. 외과 의사라고 해서 모두 남자만 있으라는 법은 없지요. 따라서 그 외과의사는 그 사람들의 어머니였던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이지만 풀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고정관념'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예수님의 말씀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만 봐도 그렇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 말씀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기름을 꾸어주지 않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치사해 보이는 그 다섯 처녀를 지혜로운 처녀라고 말할 수가 있는가? 이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결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사한 행동을 옹호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었지요. 즉,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확실치는 않지만,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신랑처럼, 오시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동시에, 오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이 준비해야 할 부분들을 점검하듯이, 맡은바 소임 안에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있어서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그 의도를 떠올리면서 우리들의 나태한 생활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인생의 지혜와 하느님 나라를 탐구하는데 보낼 수도 있고, 자신을 발전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나태해지고 자신에게 깨어있지 못하게 된다면, 저희들의 인생을 돈 버는 일이나, 성공이나, 사랑에 목숨을 걸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증권의 등락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고, 채워지지 않은 사랑의 대리 만족을 위하여 TV 드라마 보는 일로 시간을 탕진하기도 하지요. 또한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나태한 생활을 한다면 우리들은 결코 내 마음 속에 울려 퍼지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니, 예수님 왜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십니까?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삽니까? 그렇게 살다가는 굶어 죽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굶어 죽이기 위해서 그런 말씀 하신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불행해지라고 그런 말씀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그렇게 이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을 간직하면서, 나의 나태했던 생활을 깨어 준비하는 생활로 바꾸는 우리들이 될 것을 다짐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시다.



나는 잘못없다

독일에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농부가 하느님께 기도 했습니다.

"하느님 이번 여름에 햇빛을 많이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이 기도대로 햇빛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쭉정이들만 생겼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항의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나는 잘못 없다. 네가 요구한 햇빛을 나는 충분히 주었다" 농부는 외쳤습니다.

"그런데 왜 농사는 망쳤습니까?"

하느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넌 햇빛만 구하였지 찬 서리는 구하지 않았다. 서리가 없으면 곡식은 영글지 않는단다."

햇빛과 함께 서리도 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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