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17) - 사순 제5주간 목요일

2005. 3. 17. 오전 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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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17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기 17,3-9
그 무렵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나는 너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느님이 되어 주기로, 너와 대대로 네 뒤를 이을 후손들과 나 사이에 나의 계약을 세워 이를 영원한 계약으로 삼으리라. 네가 몸 붙여 살고 있는 가나안 온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리라.' 하느님께서 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뿐 아니라, 네 후손대대로 지켜야 한다.


복음 요한 8,51-59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그러자 유다인들은 “이제 우리는 당신 이 정녕 마귀 들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니 그래 당신이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 오?” 하고 대들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높인다면 그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 다. 그러나 나에게 영광을 주시는 분은 너희가 자기 하느님이라고 하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알고 있다. 내가 만일 그분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나도 너희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고 과연 그날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당신이 아직 쉰 살도 못 되 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하고 따지고 들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하 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돌을 집어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피하여 성전을 떠나가셨다.





저는 어제 KBS 방송국에 갔습니다. 방송 녹음이 있었고, 아울러 KBS 가톨릭 교우회 대상으로 부활 판공성사와 사내 미사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방송 녹음을 마친 뒤 KBS 가톨릭 교우회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간이 되었을 때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신기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거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방송국에 와서 방송 녹음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방송국이기 때문에 분명히 연예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왜 볼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했지요. 그래서 그들이 다니는 길은 혹시 다른 곳에 있나 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미사 하는 곳으로 이동을 했고, 그곳에서 고백성사와 사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에 그 방에서 나오는데, 저를 안내해주시던 분이 진한 분장을 한 어떤 분들을 가리키면서 “아시죠?”하는 것입니다. 저는 낯은 익지만 누군지를 몰라서 머리만 긁적대고 있었지요. 알고 보니 요즘 한참 인기 있는 개그 프로에 나오는 개그맨들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번에는 어떤 아나운서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분은 인기 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을 보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의 얼굴이 너무나 낯선 것이었어요. 물론 제가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기도 하지만 이렇게 몰라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KBS 방송국에 그렇게 자주 왔어도 연예인들을 거의 못 보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텔레비전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구별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더군요.

맞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연예인의 얼굴을 제대로 구별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 안에서 과연 주님을 발견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보이는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그러한 노력 없이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이 세상 안에서 제대로 볼 수가 있을까요? 더군다나 아무런 기도도 하지 않고, 또한 성서도 읽지 않으면서 주님을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다 통할 수가 있을까요?

과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종교지도자들, 즉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아주 열심히 기도와 단식을 했고, 성서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물며 그 종교지도자들보다도 못한 삶을 살면서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음은 행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과연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더 주님을 제대로 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때서야 우리들은 이 세상 안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는 방법 중의 하나. 바로 성서 읽기입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주의 깊게 잘 읽어보세요.



위함의 눈물

안질로 고생하는 왕이 있었다. 눈이 찌르고 아팠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찾아와 왕의 눈병을 고치겠노라 나섰다. 왕은 그를 따라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갔다. 왕이 생각했던 것보다 백성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때 슬픈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단칸방에 누더기를 걸친 시체 옆에 어린 자식 셋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처참한 정경에 왕도 눈물이 터져 통곡을 했다. 얼마 후 자신을 진정 하고 난 왕은 깜짝 놀랐다. 눈의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시대는 눈물이 메말랐다. 정치도, 사회도, 교육도, 교회도 눈물 메마른 안질에 걸려 있다. 사랑으로 ‘너’를 보듬는 정이 메말라가고 있다. 통곡하는 어린 삼형제와 함께 아픔을 나누며 울어주는 정치와 교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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