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07) - 사순 제4주간 월요일

2005. 3. 7. 오전 9: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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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7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야 65,17-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나는 '나의 즐거움' 예루살렘을 새로 세우고, '나의 기쁨' 예루살렘 시민을 새로 나게 하리라.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요, 그 시민은 나의 즐거움이라, 예루살렘 안에서 다시는 울음 소리가 나지 않겠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리라.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가 없을 것이며,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세에 죽으면 한창 나이에 죽었다 하고, 백 세를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벌을 받은 자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제 손으로 지은 집에 들어가 살겠고, 제 손으로 가꾼 포도를 따 먹으리라.


복음 요한 4,43-54
그때에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예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하고 말씀하신 일이 있었다. 갈릴래아에 도착하시자 그곳 사람들은 예수를 환영하였다. 그들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거기에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모두 보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의 가나에 다시 가셨다. 거기에 고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가파르나움에서 앓아 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와 자기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으니 가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셔서 아들을 고쳐 달라고 사정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 고관은 "선생님, 제 자식이 죽기 전에 같이 좀 가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였다.
예수께서 "집에 돌아가거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하시니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길에 마중 나와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고 전해 주었다. 그가 종들에게 자기 아이가 낫게 된 시간을 물어보니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그때가 바로 예수께서 "네 아들은 살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를 믿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돌아오신 뒤에 보여 주신 두 번째 기적이었다





어떤 잡지에서 본 내용인데, ‘이성 친구를 내 손 안에 두는 방법’이라고 소개된 여러 개의 글 중에서 눈에 확 띠는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여자 친구를 확 사로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세 가지만 포기하자. ‘돈’, ‘시간’, ‘자존심’.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이렇게 말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효과 100%이다.”

이성 친구나 배우자가 있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렇게 하시고 계십니까? 돈과 시간과 자존심의 포기. 그리고 매일 계속되는 사랑의 고백.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를 휘어잡고 계십니까?

사실 이런 행동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는 것이지요. 각종 핑계를 대면서요…….

“바빠서, 세상사는 것이 힘들어서, 이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이렇게 우리들은 당연히 행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는 이기심을 절대로 놓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어느 고관 한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그래야 더욱 더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믿음에 대한 기본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지 않고도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을 기초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보통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때, 꼭 신체적인 접촉을 하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 복음에서도 소경의 눈에 진흙을 개어서 붙여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냥 말만 하시지요.

“집에 돌아가거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아들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았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던 고관은 자기 집을 방문하지 않고 그냥 말만 하는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서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너희들을 지배하는 로마의 고위관리인데 내게 이럴 수 있어?’라는 생각도 가질만합니다. 하지만 그는 기본에 충실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 말 한 마디에도 굳은 믿음을 갖고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지요(만약 그런 믿음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예수님을 끌고서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랑하는 아들이 살게 되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 기본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면서 생활하는 것.

문제는 실천입니다. 그 실천 없이는 모든 것이 의미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돈’, ‘시간’, ‘자존심’을 포기합시다.



효과적인 사과 요령(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 중에서)

시기를 놓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하라
- 그러나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들일수 없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라면 잠시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

잘못과 책임을 확실히 인정하라.
- 사과를 할때는 진지하게 자신의 과오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비아냥거리면서 마지못해 사과를 하거나 변명부터 앞세우는 것은 역효과를 낸다.

조건을 달지말고 사과하라.
-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거나 상대방이 사과를 하면 나도 사과하겠다는 투의 조건부 사과역시 효과가 없다. 사과를 할 때는 조건을 달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을 표시하라
- 단지 "미안하다"는 사과만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겪는 불쾌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표현할 때 효과가 크다.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 사과를 통해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더 효과적이다.

가까운 사람부터, 사소한 일부터 사과하라
- 사과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중대한 실수 뿐 아니라 사소한 실수를 했을 때도 반드시 사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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