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2,26) - 사순 제2주간 토요일

2005. 2. 26. 오전 8:38:23

글자
2005년 2월 26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미가 7,14-15.18-20
주님, 이 백성은 남에게 내줄 수 없는 하느님의 양 떼입니다. 그 지팡이로 이 백성을 보살펴 주십시오. 주변에 기름진 동산이 많은데도 우거진 숲 속을 헤매는 외로운 양 떼를, 그 옛날처럼, 바산과 길르앗에서 풀을 뜯게 해 주십시오. 이집트에서 나오실 때 보여 주신 놀라운 일을 다시 보여 주십시오.
하느님 같은 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에게 넘겨줄 수 없어 남기신 이 적은 무리,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용서해 주시고,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 주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기쁨이야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일 아니십니까? 그러니 어찌 노여움을 끝내 품고 계시겠습니까?
마음을 돌이키시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온갖 죄악을 부수어 주십시오. 깊은 바다에 쓸어 넣어 주십시오. 한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 야곱의 후손에게, 우리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거짓 없는 사랑,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복음 루가 15,1-3.11-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하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하고 말하였다.”





결혼하신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만약 다시 태어나신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또 다시 결혼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서 90%가 넘는 사람이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이 조사를 들은 어떤 신부님이 신자분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결혼하실 분이 있으시면 한 번 손들어 보라고 했지요.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더랍니다. 신부님은 감동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렇게 사랑이 깊었습니까?”

하지만 할머니의 대답은 아주 의외였습니다.

“다…… 그놈이 그놈이여……. 그래도 길들여진 놈이 아무래도 낫제…….”

이 할머니의 말씀은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배우자가 형편없는 것 같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호감이 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호감이 가는 그 사람은 단점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다 그놈이 그놈인 것입니다.

지난 2월 7일에 저희 집 강아지가 5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새끼들이 지금은 다 눈을 떴고요, 걸어 다니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짓기도 합니다. 아직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성장이 빠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어떤가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 강아지들처럼 한 달 만에 걸어 다니기도 하고 말도 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들의 능력은 인간이 키우고 있는 개에 비해서 형편없습니다. 개처럼 빠르지도 않고, 청각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또한 냄새를 잘 맡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개의 능력을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개이지만, 개가 되고 싶다고 개가 부러워서 죽겠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지요.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 때문이지요. 동물보다 더 고차원의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이성을 통해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이 비록 사람보다 능력이 많아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렇게 남들의 능력과 자신을 비교하고, 그 비교를 통해서 남들을 부러워할까요? 동물보다도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데, 그 인간의 능력이 뭐가 부럽다고 왜 이렇게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못난 놈을 만들고 있을까요? 사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바라볼 때는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앞선 그 할머니의 답변을 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다…… 그놈이 그놈이여…….”

오늘 복음은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해줍니다. 즉, 방탕한 생활을 했던 작은 아들이 깊이 뉘우쳐서 아버지께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필요없다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큰 아들입니다. 이 큰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아들 같습니다. 그런데 방탕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 때문에 못마땅해 하지요. 바로 자신과 자기의 동생을 비교했고, 그 과정 안에서 차별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를 못마땅해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에게 누가 더 잘나고 누가 더 못났겠습니까? 둘 다 사랑스러운 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큰 아들이 화났다는 말을 듣자, 직접 나와서 달래는 자상함을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과 나를 비교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다 그놈이 그놈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맙시다. 대신 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집시다.



작은 도움('Personalgrowthsystem.com'에서)

나에게는 카일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것 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카일은 여러 권의 책을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주말인데 저 책을 다 읽으려나? 따분한 공부벌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책을 들고 가던 카일은 꼬마들과 부딪혀 그 책을 모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의 안경도 잔디밭으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나는 그에게 달려갔고 바닥에 떨어진 책과 안경을 챙겨줬다. 그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눈빛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끙끙대며 들고 가던 책을 나눠 가져갔다. 집으로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카일에게 "내일 주말인데 함께 풋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됐다.

며칠 후 카일은 수십 권의 책을 다시 학교로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를 도왔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 시기가 됐다.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돼 있었다. 그는 조지타운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카일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나는 듀크대 입학 허가를 받았다. 카일은 고교 졸업식 때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하게 됐다. 나는 그의 등을 치며 "넌 잘 할거야!"라고 격려했다. 연설이 시작됐다.

"졸업식은 감사를 드리는 행사입니다.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고1 때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결심을 하고 학교 사물함에 있는 책을 정리해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 어머니가 수고하실까봐 제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떤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도움을 줬고 저는 자살 결심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나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작은 행동 하나, 몸짓 하나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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