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2,22)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2005. 2. 22. 오전 8:33:49

글자
2005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제1독서 베드로 1서 5,1-4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 가운데 원로로 계신 분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장차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 주신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잘 돌보되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며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목자의 으뜸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16,13-19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이곳 성지에서는 며칠 뒤에 공사를 할 예정입니다. 성당이 너무나 좁아서 성당과 붙어있는 사무실 자리를 터서 합치는 동시에, 전기와 수도 공사를 할 것입니다. 즉, 지금 있는 건물의 리모델링을 하려는 것이지요. 사실 이 공사는 빨리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봄이 되면 순례객들이 늘어날 테고, 그래도 200명 정도 함께 미사를 해야 하는 공간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금 있는 성당은 빈자리가 전혀 없을 정도로 서 있어도 100명이 채 들어오기 힘들거든요. 또한 불완전한 전기, 그리고 잘 나오지 않는 수도도 하루빨리 고쳐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사는 빨리 해야 하는데 큰 걱정꺼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공사를 위한 공사비는 어디서 마련하느냐는 것이지요. 교구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생활하다가 갑자기 지원을 해달라고 청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것 같았고, 어쩔 수 없이 비싼 이자를 물고 은행에서 대출받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역시 저의 편이시더군요. 어떤 분께서 지난 주 금요일에 성지로 꽤 많은 금액을 기부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공사를 하는데 여유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화려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빚을 지지 않고서도 공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기부를 해주신 그분께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주셨던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의 걱정꺼리가 생겼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금요일 저녁에 기부금을 주셨기 때문에 은행에 넣어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요즘 은행은 토요일과 주일에 쉬거든요. 따라서 저는 이 기부금을 혹시 도둑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방 구석에 잘 숨겨 두었지만(금고가 없거든요), 항상 열어 놓는 방인지라(사실 자물쇠도 없습니다) 잠시 어디를 가더라도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은행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제빨리 모두 입금을 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지더군요. 제 방에 기부금이 숨겨져 있는 2박 3일 동안의 시간에는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사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숨겨둘까를 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편안한 마음과 더불어 이제야 비로소 공사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이번의 이 체험을 통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것에 이렇게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축일을 맞이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사람들의 말을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예언자 가운데 한 분…….

이 말에 예수님께서는 실망을 하셨나 봅니다. 왜냐하면 당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면서 제자들의 의견을 구하십니다. 바로 그 순간 베드로가 나서서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베드로 역시 잘못된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1+1=3’이라고 하고 이것이야말로 진리라고 말하는데, 여러분 혼자서 ‘1+1=2’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비록 진리라 할지라도 혼자서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세상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주님과 함께 하였기 때문에 주님을 제대로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얼마나 주님을 알고 있나요? 혹시 주님에 대해서 그 당시의 보통 사람들처럼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 ‘이런 분일 꺼야.’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역시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의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맙시다. 그럴수록 불안해 집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정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사랑을 5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관심을 갖는 것이다.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만나는 사람 중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가 있는데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존경하는 것이다.만나는 사람의 위치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것이 존경이다.이 존경하는 마음이 사랑이다.

셋째, 이해하는 것이다.이해란 말의 영어의 뜻은 ‘아래에 서다’란 뜻이다.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낮추고 상대방을 바라볼 때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책임을 말한다.사람들은 자기 입장과 권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매사에 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한다.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이 책임감이 사랑이다.

다섯째, 주는 것이다.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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