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야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 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복음 마태오 6,7-15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제가 있는 갑곶성지의 미사에 참석하셨던 분은 아시겠지만, 미사 중에 형편없는 기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박자도 잘 맞지 않고 때로는 기타 음도 틀려서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1년 넘게 그 기타 소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기타 소리를 이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반주자가 없기에 그 소리를 피할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타를 통해서 듣기 싫은 미사 반주를 하는 사람은 바로 저, 빠다킹 신부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서 온 뒤부터 계속되는 미사는 너무나 무미건조했습니다. 특히 이곳은 일반 본당이 아니기에 매일 미사 반주 해주실 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기타 실력으로 미사 반주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사반주를 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도 기타 실력은 전혀 늘지를 않으니, 제가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사람이 많으나 적으나 상관없이 기타 반주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기타를 칠 때, 손가락이 아프지 말라고 쓰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피크’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것을 이용해서 기타를 치면 손가락이 아프지 않은 것은 물론, 손가락으로 치는 것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가 있지요. 그래서 저는 미사 때마다 이 피크를 손가락에 쥔 상태에서 기타 반주를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아주 곤란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5개 정도의 피크를 가지고 있었는데 1년 사이에 5개 모두가 손상된 것입니다. 부러지고, 깨지고, 분실되고……. 따라서 강화 읍내로 이 피크를 사기위해 나갔습니다. 보통 이 피크는 기타를 파는 곳이나, 음반 가게에 가면 쉽게 찾을 수가 있지요. 하지만 강화가 촌은 촌인가 봅니다. 글쎄 피크를 파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 방송 출현을 위해서 서울 명동에 갈 일이 있었거든요. 강화야 촌이라서 피크를 구매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사람이 많은 명동에는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명동에서도 이 피크는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옷가게, 음식점, 화장품가게 등등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지만, 악기를 파는 곳도 음반 가게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오래된 문구점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더니만 명동에는 악기점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큰 실망을 한 채 다시 갑곶성지로 돌아오는데 바로 그 순간, 이곳 성지를 방문하겠다는 제 동창 신부가 떠올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신부가 사는 동네에 커다란 악기점이 있다는 것도 기억났지요. 그래서 동창 신부에게 부탁했습니다. 이곳에 올 때, 피크 좀 많이 사다달라고요.
피크의 가격은 하나당 500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찾기 위해서 강화 전체를, 그리고 명동 전체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요. 하지만 동창신부를 통해서 저는 12개의 피크를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이렇게 조금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깊은 생각을 피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즉흥적으로 행하는 나의 경솔함으로 스스로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얼마나 많은 내 이웃들이 상처를 받고 있었는지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문제는 제대로 구하지 않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까지도 직접 가르쳐주셨을까요?
조금만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제대로 구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바칩시다.
잊어버리는 것의 소중함 인간이란 행복하지 않으면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상태의 것인가? 도대체 행복의 크기는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사람마다의 대답은 각기 다른 것이고 또한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란 평생을 이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나 당신..그리고 어느 누구이고 모르는 일이다.
행복을 어떤 방법으로 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암시해 보겠다. 그 하나는 우리의 행복은 얻음으로써
그 얻음에 의해 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얻은 것에 따라 행복의 크기를 잰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잃는 것에 따라 행복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우리들은 건강과 질병에서 보듯이 평소 건강할 때에는 건강에 대한 행복감을 모른다.
건강을 잃고 병마에 시달릴 때 비로소 건강을 되찾고자 몸부림친다. 병마는 몸으로 하여금 고통과 외로움을 안겨 준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할 때는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한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행복에 취해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이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고통에 의해
그 소중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고 나서야
"나는 행복했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