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다니엘 9,4ㄴ-10 “주님, 크고 두려우신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약을 어김없이 지키시는 하느님, 우리는 못된 일만 하였으며 비뚤어진 짓만 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배신하고 몹쓸 짓을 하고 명령과 법을 어겼습니다. 하느님의 종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는 저버렸습니다. 주님, 우리는 지금 이처럼 얼굴을 들 수 없이 되었습니다마는 주께는 잘못이 없습니다. 유다 사람이나 예루살렘 주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이나 멀리 온 세상에 흩어진 사람들이 모두가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배신하여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주님, 우리는 임금들이나 고관들이나 조상들까지 모두가 주께 죄를 얻어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 우리 하느님께서는 애처로운 이 모양이 가엾어 용서해 주셨지만, 우리는 주께 반항만 하였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 우리 앞에 법을 펴시고 그대로 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복음 루가 6,36-38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전에 어떤 자매님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대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언니, 제가 요즘 고민이 있어요. 몇 호에 사시는 아주머니 있잖아요. 글쎄 그 아주머니가 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다닌다는거에요. 그 아주머니를 평생 보지 않을 것도 아니고……. 성질 같아서는 한번 엎어 버리고도 싶고……. 저 어떻게 해야 하지요?”
이러한 말씀에 상대 자매님은 아주 간단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냥 엎어 버려. 나는 그런 아줌마를 그냥 안 놔둬.”
글쎄요.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자매님께서 과연 그 말씀대로 엎어 버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엎어 버렸다고 그 고민이 과연 해결되었을까요?
많이 들으셨을만한 이야기 하나 전해 드립니다.
버섯을 캐는 남자 둘이서 숲을 걷다가 한 사람이 무심코 땅위에 떨어진 과일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일이 갑자기 두 배로 커지는 것이었어요.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나이가 그 모양이 의심스러워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밟았지요. 그랬더니 다시 두 배로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상히 여겨서, 이번에는 들고 있던 작대기로 서로 돌아가며 그 과일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과일이 더 커져서 아예 숲의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수염을 하얗게 기른 도사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자꾸 건드리지 말아라. 그것은 싸움이라는 이름의 과일이다. 맞서지 않으면 처음 그대로이나, 상대하여 맞서면 계속 커지는 이상한 과일이지.”
맞습니다. 싸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놔두면 그대로지만, 내가 상대를 하면서 그 사람에게 이기려고 하면 할수록 그 관계는 더욱 더 멀어지는 것은 물론 나의 길까지도 막아버린다는 것이지요. 즉, 편안한 마음이 아니라 불편한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 미움의 마음이 자리잡음으로써 모든 것을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저는 이곳 갑곶성지에 오시는 순례객들에게 우리 모두 현대의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꼭 전해 드립니다. 물론 현대에는 주님을 믿는다고 피를 흘리면서 순교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현대에도 순교자는 분명히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말씀은 사랑이었고, 사랑이란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반대로 미움이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미워한다면 그 모습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이고, 과거로 친다면 이것이 바로 배교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정말로 밉고, 그 사람이 내게 너무나 못될 짓을 많이 합니다. 이 사람만 없으면 내가 좀 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사랑 가득한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물론 어떤 물질적인 도움까지 전해주려 한다면, 이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모습이고 과거로 친다면 이것이 바로 순교자의 삶이라는 것이지요.
나만을 생각하는 그래서 미움으로 가득찬 배교자의 삶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대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을 하는 현대의 순교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판하고, 단죄하고, 미워했던 나의 이웃을 위해 지금 당장 기도합시다.
용서(U.샤퍼) 조금 더 감정을 자제했어야 했는데 그대를 너무 모질게 대했던 것 지금 늦기는 했지만 용서를 청합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용서를 청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생각뿐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지 라는 생각 역시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미움의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것 그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모른척 덮어두자는 것뿐 용서가 없으면 미움의 앙금은 여전히 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불시에 떠올라 서로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미움을 키워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대를 용서하고 나 또한 그대의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우리의 사랑도 커갈수 있도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