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06) - 사순 제4주일 가해

2005. 3. 6. 오전 8: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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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6일 사순 제4주일 가해

제1독서 사무엘 상권 16,1ᄂ.6-7.10-13ᄀ
그 무렵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에게로 보낸다.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내가 왕으로 세울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사무엘은 가서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바로 여기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성별하실 자가 있구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마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하고 이르셨다.
이새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에 나와 뵙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 가운데는 주님께서 뽑으신 아들이 없소."하고 이새에게 그 밖에 아들은 또 없느냐고 물었다. 이새가 "막내가 또 있긴 하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사무엘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하고 일렀다.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온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말씀을 내리셨다. "바로 이 아이다, 어서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리하여 사무엘은 기름 채운 뿔을 집어 들고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


제2독서 에페소 5,8-14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 내십시오.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행위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일을 폭로하십시오.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숨어서 하는데 그것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입니다. 모든 것은 폭로되면 빛을 받아 드러나고 빛을 받아 드러나면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는 말씀이 이 뜻입니다


복음 요한 9,1-41
그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그의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그는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또 그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다. 그는“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하는 사람도 있었고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수 있겠소?”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본래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의 부모는 “예, 틀림없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 보게 되었는지, 또 누가 눈을 뜨게 하여 주었는지는 모릅니다. 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제 일은 제가 대답하겠지요.” 하였다.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그의 부모가 “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 오.” 하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다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놓고 “사실대로 말하시오. 우리가 알기로는 그 사람은 죄인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앞 못 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 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그러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했소?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했단 말이오?” 하고 그들이 다시 묻자 그는 “그 이야기를 벌써 해 드렸는데 그때에는 듣지도 않더니 왜 다시 묻습니까?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너는 그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는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지만 그자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분명히 내 눈을 뜨게 하여 주셨는데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있습니 까?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하고 대들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어제는 초등학교 동창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인천 주안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저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 얼굴보기 정말 힘들다. 왜 이렇게 바쁜 거야?”

하긴 많은 분들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무나 바빠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만나고 싶은데, 그때마다 제가 일이 있다고 하니 만날 수 없었고 그래서 바쁘게 보이는 것이겠지요. 사실 저는 사람들과의 만남보다는, 일을 하는데 더 집중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원래 맡겨진 본래의 일인 성지 개발뿐만이 아니라, 라디오 방송출현과 인터넷 방송 진행, 매일 계속되는 새벽 묵상 글, 신학교 영성지도, 홈페이지에서의 활동, 사제 모임에서의 활동, 각종 강의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하는 성서 공부 봉사……. 또한 굶어죽지 않으려면 밥도 해먹어야 하고, 깨끗한 옷을 입기 위해 빨래도 해야 합니다. 오시는 순례객들을 위해서 화장실 청소를 비롯한 주변 청소도 깨끗이 해야 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저의 일들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다 보니 매일 새벽 2,3시에 일어나도 항상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생각해보니, 어쩌면 저는 일만을 생각하면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단 한 번도 본당 신부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당 신부들의 말을 들으면 늘 바쁘고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보다 일의 양이 적은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말을 하는 본당 신부의 모습을 이해하기가 힘들더군요. 하지만 그분들은 제가 하고 있는 일보다도 더 힘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바로 제가 못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밤늦게 술도 마셔야 하고, 또 때로는 사람들과 심각한 논쟁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피곤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눈에 보이는 일의 양으로만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일의 많고 적음을 어떻게 따질 수 있을까요? 결국 일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잠시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판단을 하는 바리사이의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태생 소경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경을 보면서 궁금증이 있었나 봅니다.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죄를 지어서 하느님께 벌을 받고 있는 것인데,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태어나면서 어떤 죄를 짓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습니다. 즉, 죄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대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말씀하시지요. 그리고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고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

이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치유가 바로 안식일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소경은 놀라운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이 호칭은 그 당시의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보다 더 높은 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났는지, 지금 눈을 뜬 소경을 예전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는가?”

이 소경은 분명히 눈을 떴습니다. 즉, 죄를 지어서 장님으로 태어났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이제 눈을 떴으니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이제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의 상태만을 강조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회당에서 쫓아냅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다시 다가서셨고, 이 소경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치유하심을 보고도 인정하지 못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습이 어쩌면 나의 모습은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했던 잘못된 착각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내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단죄하였던 엄청난 죄들. 그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러한 죄를 반복하고 있는 나야 말로 눈 뜬 장님이었음을…….


너무나 힘든 사목을 하시는 본당신부님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어떤 사람?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강한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고,

가장 존경 받는 부자는, 적시적소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놀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일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인격은, 자기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사람이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늘 일하는 사람이며,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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