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02)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2005. 3. 2. 오전 8: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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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2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신명기 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 이스라엘은 들어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를 듣고 지켜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선조의 주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보아라. 나는 우리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내리신 규정들과 법규들을 그대로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살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그것들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 그것을 보고 다른 민족들이 너희가 지혜 있고 슬기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정녕 지혜 있고 슬기로운 백성은 이 위대한 민족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분이시다. 그처럼 가까이 계셔 주시는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어디 또 있겠느냐?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선포하는 이 모든 법만큼 바른 규정과 법규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 또 있겠느냐?
정신차려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여라.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명심하여 잊지 않도록 하여라. 평생토록 그것들을 이 너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여라. 그리고 그것을 자자손손 깨우쳐 주어라."


복음 마태오 5,17-19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어제부터 우리는 3월이라는 새로운 달에 살고 있습니다. 3월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봄이라는 생각이 절로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제 사람들에게 ‘이제 봄입니다. 봄을 맞이했으니 봄의 분위기에 맞춰서 화사하게 살아갑시다.’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창밖을 보고 나서는 어제 했던 그 말들을 취소하고 싶네요. 왜냐하면 지금 창밖에는 흰 눈이 펑펑 오고 있거든요. 저는 이제 흰 눈이 오는 겨울이 아닌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봄만을 생각했는데, 흰 눈이 오고 있으니 과연 봄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저는 저 흰 눈을 바라보면서 언제 치우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날 밝으면 치울까?’ 아니면 ‘지금 당장 나가서 쓸기 시작할까?’ 날 밝을 때 치우면, 밝아서 그런지 춥지 않은 것은 물론 주변이 잘 보여서 내가 얼마나 쓸었고 그리고 얼마나 더 쓸면 되는지가 쉽게 파악이 되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즉, 요즘은 날이 포근해서 그런지, 날이 밝으면서 눈이 녹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눈이 녹으면 치우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거든요.

사실 눈을 치우는 것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눈이 그친 뒤 다음 날에 눈을 치우는 사람이 있을까요? 눈이 그친 뒤에 바로 쓸거나, 눈이 조금씩 멈추기 시작할 때 치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바빠서 이틀 뒤에 치울꺼야 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그분은 눈을 도저히 치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날이 추워진다면 빙판이 될 것이고, 다행히 여름 날씨로 변한다면 모두 녹아서 질퍽한 상태가 되겠지요.

눈을 치우는 것은 바로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을 치우는 것을 미루면 미룰수록 그 힘든 일처리를 뒤에 또 다시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쩌면 이 세상살이가 모두 이런 것은 아닐까요? 지금 내가 실천하지 않고 미루다가 결국 손해를 보았던 적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다른 사람이 먼저 한 뒤에나 하겠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지금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 때문에, 내 일이 아니라는 섣부른 판단 때문에, 다음에 해도 된다는 안일한 마음 때문에,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이유로 우리들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늘 뒤로 미루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순서에 입각해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스스로 계명을 지킬 것.

두 번째. 그 계명을 남에게 지키도록 가르칠 것.

분명히 먼저 스스로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순서가 거꾸로 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남이 먼저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큰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처럼, 그게 그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눈 치우는 것을 뒤로 미루면 눈 쓸 시기를 놓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꾸로 남에게 지키도록 가르친 뒤에 자신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시기를 놓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는 첫 번째 방법. 그 방법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참, 그 방법이 무엇이죠?

“스스로 계명을 먼저 지킬 것~~”


길이 많이 미끄럽습니다. 운전하시는 분들 조심하세요.



땡땡이 수도사

어느 수도원에 여러 명의 수도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땡땡이 수사'라 불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미사시간에도 가끔 지각하고 기도시간도 잘 빼먹고 복장도 불량하여 마치 수사 같지 않은 수사라고 해서 그런 별명을 얻은 것입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수도사들이 모두 천국에 갔습니다. 그리고 땅에서의 삶에 대해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땡 수사의 점수가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 그의 행실을 잘 알고 있는 동료들이 부당하다며 항의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땡 수사는 수사가 된 이후 의식적으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쩌다 의견충돌이 있을 때에도 그 자리에서 즉시 화해를 했고,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나와 귀를 씻었다. 나는 분명히 성경에 '남을 판단하지 않으면 판단 받지 않으며, 용서하면 용서받는다'고 했는데, 땡수사는 판단하지 않았으니 판단 받을 것이 없고, 용서했으니 나도 모든 것을 용서했을 뿐! 그에게 특별히 점수를 더 준 것은 아니니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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