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다니엘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희 주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못된 짓을 하다가 쓰러졌지만, 모두 주님께 돌아와 이렇게 빌어라. '비록 못된 짓은 하였지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이 입술로 하느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아시리아가 어찌 우리를 구하겠습니까? 우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아니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것보고 우리 하느님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하느님 외에 누가 고아 같은 우리에게 어버이의 정을 베풀겠습니까?" 이스라엘은 나를 배신하였다가 병들었으나, 나는 그 병든 마음을 고쳐 주고 사랑하여 주리라. 이제 내 노여움은 다 풀렸다. 내가 이스라엘을 스올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리라.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빼내리라. '죽음아, 네가 퍼뜨린 염병은 어찌 되었느냐? 스올아! 네가 쏜 독침은 어찌 되었느냐?'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리면,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햇순이 새록새록 돋아, 감람나무처럼 멋지고, 레바논 숲처럼 향기로우리라. 이스라엘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며, 농사지어 곡식을 거두리라. 포도덩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지리라. 내가 기도를 들어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브라임이 다시 우상과 무엇 때문에 상관하랴. 나는 싱싱한 전나무와도 같고, 너희가 따 먹을 열매가 달린 과일 나무와도 같다. 지혜가 있거든, 이 일을 깨달아라. 슬기가 있거든, 이 뜻을 알아라. 주님께서 보여 주신 길은 곧은길, 죄인은 그 길에서 걸려 넘어지지만, 죄 없는 사람은 그 길을 따라가리라."
복음 마르코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휠씬 더 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수도사가 허허벌판 사막에서 영성수련을 위해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유혹하여 기도를 방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마귀는 먼저 아주 맛난 음식으로 배고픈 수도사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끄떡도 안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심, 공포, 육욕, 물질, 명예 등을 부추기는 유혹을 했지만, 이미 기도로 무장이 된 수도사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약이 바짝 오른 마귀가 최후의 수단으로 수도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헤, 당신 동생이 글쎄, 당신네 교구 주교가 됐다더군."
이 말을 들은 수도사의 얼굴이 금새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니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질투 유혹이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이웃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있지요. 그만큼 자신이 아닌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기란 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앞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훌륭한 성덕을 지니고 있었던 수도사 역시 질투를 통해 결국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계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는 한 율법학자의 계명에 큰 공감을 해주시지요. 즉, 우리가 기도도 아주 열심히 하고 능력이 아주 뛰어난다고 할지라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움직이는데 나약한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 책상의 위에는 라이터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런데 그 라이터의 겉에는 어떤 가게의 홍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이런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신장개업, 초이스 안마”
사실 그저께 동창신부 모임 때,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떤 젊은 청년이 한 명 한 명에게 라이터를 돌리면서 술 드신 뒤에 쉬고 가라는 말을 하더군요. 저는 그 라이터를 보는 순간, 성지의 초봉헌함이 생각났습니다. 초 봉헌함에서 초를 켜기 위해서는 라이터가 필요한데, 라이터를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창신부 각자가 받은 라이터를 모두 뺐었습니다. 그리고 그 라이터들이 지금 제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신장개업, 초이스 안마”라는 글씨입니다. 혹시 이 라이터를 보신 순례객이 ‘여기 신부님은 안마를 받으러 많이 가나봐.’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지금의 라이터를 그냥 초봉헌함에 갖다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더군요. 아세톤으로 라이터에 쓰여 있는 글씨를 지우던가, 아니면 색 테이프로 라이터를 감싸야 초봉헌함에 갖다 놓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떠올려 지더군요. 라이터 자체는 성지의 초봉헌함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입니다. 하지만 겉에 붙어있는 글씨 때문에 유용하게 쓰여야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들 각자 각자는 하느님의 훌륭한 창조물로써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 짓는 죄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그 어떤 계명의 실천보다도 가장 중요한 계명의 실천은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죄를 짓는 것보다는 오로지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순시기의 중반에 들어섭니다. 판공성사를 통해서 우리를 추하게 만들어버리는 죄의 허물을 하루빨리 벗어던졌으면 합니다.
고백성사를 볼 준비를 합시다. 그리고 가능하신 분은 고백성사를 보세요.
흙 밭과 마음 밭 밭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흙 밭이요 또 하나는 마음 밭이 그것입니다.
흙 밭은 우리 인간이 먹고 살아가야 할 곡식의 씨앗을 심는 밭이요 마음 밭은 영혼의 씨앗을 심는 밭을 말함 입니다.
흙 밭에는 옥토와 박토가 있고 진흙 밭 자갈밭이 있으며, 수렁밭이 있는가 하면 부토가 섞인 푸석한 밭도 있습니다. 흙도 다 같은 흙이 아니라 그 토질에 따라 여러 종류와 형태가 있습니다.
토질에 관계없이 아무런 씨앗을 뿌린다 해서 수확을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토양과 토질에 적합한 씨앗을 뿌려야만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밭의 작업은 낮이 따로 없고 밤이 따로 없습니다. 즉 정해진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열두 달 가꾸고 다듬어야 합니다.
흙 밭에서 얻어진 열매는 먹지 않으면 배고프지만 마음 밭의 열매는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흙 밭을 갈 때는 육신의 피로가 따르지만 마음 밭을 갈 때는 정신적으로 쓰라린 아픔을 겪게 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