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09)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2005. 3. 9. 오후 11:40:29

글자
2005년 3월 9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야 49,8-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의 소원을 기쁘게 들어줄 때가 온다. 너를 도와주고 구원해 줄 날이 온다. 그날 내가 손수 빚은 너를 사이에 두고, 나의 백성과 계약을 맺으리라. 그날 너는 쑥밭이 되었던 유산을 되찾아 나라를 재건하여라.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일러라. '어서 나오너라.' 캄캄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자들에게 일러라. '나와 몸을 드러내어라.' 그들은 가는 길에서마다 풀을 뜯으리니, 돌아가는 길가 어디든지 뜯을 풀이 있고, 사는 곳에서마다 푸른 풀로 덮인 언덕을 만나리라. 그들은 결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열풍에 쓰러지고 햇볕에 넘어지는 일도 없으리라. 내가 그들을 가엾게 여겨 이끌어 주고, 샘이 솟는 곳으로 인도해 주리라. 첩첩산중에 길을 닦고, 굽이굽이 큰 길을 돋우어 주리라.
먼 곳에서 돌아가는 이 사람들을 보아라. 북에서도 서에서도 돌아가고, 시님족의 나라에서도 돌아간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를 질러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그 천대받는 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너 시온은 말하였었지.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복음 요한 5,17-30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 일도 보여 주실 것이다.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때이다. 아버지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말에 놀라지 마라.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올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저 하느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르다.





건달 같아 보이는 어떤 사나이가 화를 내면서 성당에 들어섰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가톨릭 신자가 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신부님을 찾아가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님, 만약 당신의 집에 손님이 와서 음식을 접대했는데, 그 손님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자 사나이는 “그야 당연히 제 것이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형제님, 그와 같이 당신이 제게 욕을 퍼 부었지만, 저는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욕은 형제님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것은 받고, 나쁜 것은 받지 않는 것.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지혜를 간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을 치고받아야 용기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요? 아마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사나이도 신부님을 찾아간 것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용기 있어 보이는 행동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으로 전락하고 말지요.

어제는 새벽 6시 미사가 끝나자마자 서울로 행했습니다. 방송 녹음이 있는 날이거든요. 평소 같으면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9시부터 녹음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길이 막힐 것을 대비해서 미사가 끝나자마자 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서울의 출근길은 엄청나더군요. 그렇게 많은 차들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아무튼 저는 막히는 도로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차 앞으로 끼어들어오는 차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 했거든요. 하지만 끼어든 그 차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미안하다는 수신호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더군요. 순간 ‘뭐……. 저런 차가 있어.’하면서 제 차로 앞 차를 받아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차로 앞 차를 받아 버린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방송국 가는데 더 빨리 갈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오히려 더 늦을 것입니다. 제가 앞 차에 대해서 욕을 퍼 붓는다고 또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사람의 귀가 약간 간지러울 수는 있겠지만, 결국 제 자신의 인격만 더 낮춰지는 것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용기있어 보이나요? 아무도 그런 용기는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결국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그 나쁜 모든 행동들은 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면서 욕을 퍼붓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손해 볼 짓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한정된 사고로 예수님에 대해 욕하고 단죄하는 그래서 자신들의 옆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발로 차버리는 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말과 나쁜 행동들. 그것들은 결국 나에게 다시 나쁜 말과 나쁜 행동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좋은 말과 좋은 행동들은 어떨까요? 그것 역시 나에게 다시 좋은 말과 좋은 행동으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이제 나의 모든 말과 나의 모든 행동들은 어떤 식이 되어야 할까요? 답을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좋은 말과 좋은 행동들을 하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건강한 몸이 재산입니다(좋은 생각 중에서)

사업을 경영하고 있던 스탠리라고 하는 사람이 병이 들어 수 개월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몸이 나아서 퇴원을 하고 보니 이미 그의 사업은 다 조각이 난 후였다.
오랫동안 자기의 생애와 정력을 쏟아부어 이룩했던
사업이 완전히 쓰러져버린 것으로 인하여 그는 깊은 낙담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는 여전히 실망한 마음으로 호텔 로비를 걸어 나오는데 뒤에서
누가 자기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고로 양쪽 다리를 모두 잃어버린 짐이라는 친구였다.
그는 스탠리를 향해서 명랑하게 말했다.
“스탠리 웬일이야? 그렇게 맥이 빠진 것을 보니 마치 마지막 친구까지
다 잃어버린 사람의 표정이야!”
그러면서 그는 의족으로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것이었다. 이 실패한 사업가는
그 명랑한 친구 짐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에 저 친구가 나의 건강한 이 두 다리를 살 수만 있다면
그 돈을 다 들여서라도 아마 건강한 두 다리를 사겠지!’

두 다리가 없는 친구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그 젊은 사업가는 자기의 태도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하겠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에 그는 한 연회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백만장자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건강하고 온전한 몸이 있습니다.
나는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나에게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나에게는 직장이 있으니
나는 이 사회에 공헌할 기회도 있습니다. 나는 부자입니다.”

댓글 1

  • 2005년 3월 9일 오후 11:45

    어제 일로 좀 다녀 왔습니다..늦은 시간이 되어 돌아와 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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