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10) - 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05. 3. 10. 오전 1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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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10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출애굽 32,7-14
그 무렵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당장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에서 데려 내온 너의 백성들이 고약하게 놀아나고 있다. 저들이 내가 명령한 길에서 저다지도 빨리 벗어나 저희 손으로 부어 만든 수송아지에게 예배하고 제물을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온 우리의 신이다.' 하고 떠드는구나!"
주님께서 계속하여 모세에게 이르셨다. "나는 이 백성을 잘 안다. 보아라,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나를 말리지 마라. 내가 진노를 내려 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리라. 그리고 너에게서 큰 백성을 일으키리라."
모세는 그의 주 하느님의 노기를 풀어 드리려고 애원하였다. "주님, 당신께서는 그 강하신 팔을 휘두르시어 놀라운 힘으로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 백성에게 이토록 화를 내시옵니까? 어찌하여 '아하, 그가 화를 내어 그 백성을 데려 내다가 산골짜기에서 죽여 없애 버리고 땅에 씨도 남기지 않았구나.' 하는 말을 이집트인들에게서 들으시려 하십니까? 제발 화를 내지 마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당신의 명예를 걸고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다 너의 후손에게 주어 길이 유산으로 차지하게 하겠다.' 하고 맹세해 주셨던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으시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내리겠다 하시던 재앙을 거두셨다.


복음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 자신의 일을 내 입으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된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이가 따로 있으니 그의 증언은 분명히 참된 것이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요한은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에게는 사람의 증언이 소용 없으나 다만 너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요한은 환하게 타오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을 보고 대단히 좋아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훨씬 더 나은 증언이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성취하라고 맡겨 주신 일인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모습을 본 일도 없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으므로 마음속에 아버지의 말씀이 들어 있지 않다.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들일 것이다.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바라지 않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발할 사람은 오히려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만일 너희가 모세를 믿는다면 나를 믿을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것은 바로 나에게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세의 글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





아인슈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실험실을 보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사람은 워낙 유명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의 실험실에는 첨단 과학 장비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과학 장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바로 옆에 있는 휴지통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저것입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어떤 값비싼 실험 장치보다 어디서나 계산할 수 있는 종이와 만년필 그리고 계산할 때 썼던 종이를 버리는 휴지통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는 이렇게 중요한 것들이 이미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특별한 것 그리고 더 좋은 것들만을 찾다보니, 이미 주어진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부터 저는 제 방의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성지 공사가 다음 주부터는 들어가거든요. 따라서 공사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저의 짐도 정리를 할 겸해서 차분히 짐을 싸고 있는데 저를 깜짝 놀라게 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글쎄……. 저는 너무나도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게 하는 것은, 그 좋은 물건들이 그냥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건뿐만이 아니었지요.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도 꽤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유다인들. 그들 역시 이런 어리석음을 간직하고 있었지요. 자신들을 심판하실 분,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이 바로 코앞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가지 못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저 예수라는 작자를 제거할 수 있겠는가?’만을 궁리하면서 그들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을 오히려 없애버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품었던 것은, 자신들을 구원할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율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주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더욱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주님을 내 마음에서 쫓아내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남의 것도 빼앗으려는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가진 분들이 대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공통된 말이 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너무 없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한다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그리고 그분께 철저히 매달릴 수만 있다면 너무나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 세상의 것들에 자유로워지면서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진 것 없다는 말을 하지 맙시다. 찾아보면 많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최문식)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한분만을 사랑하게 하시되
의무적인 마음과 거짓된 마음으로도
형식적이고 어쩔수 없이 사랑하는 마지못한 마음으로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의 것들을
마음속에 품은채로 사랑하지는 말게 하소서.

오직 신실한 마음으로만
정결하고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마음으로만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으로 내 영혼 충만할 수 있는 마음으로만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내 영혼 향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사랑하게 하소서.
내 영혼의 간구에 은혜로써 응답하심도
내 영혼을 사랑하셔서 허락하시는 시련과 고난도
때때로 좌절과 실패를 허락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내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그의 독생자를 세상중에 보내심도
주님의 고난받으심과
십자가에 달려 보혈의 피를 흘리심도
죽으신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심도
부활하셔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가운데
사랑과 은혜로써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그 마음을
하느님의 그 손길을 내 영혼이 영원히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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