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15)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2005. 3. 15. 오전 9: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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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5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기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에돔 지방을 피해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홍해 쪽으로 돌아갔다. 길을 가는 동안 백성들은 참지 못하고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 내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죽일 작정입니까?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 거친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불뱀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자, 백성들은 마침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대든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뱀이 물러가게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았다. 뱀에게 물렸어도 그 구리뱀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다.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은 "이 사람이 자기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으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하고 그들이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기에 나도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이 세상에서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외국에서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에 하나는 바로 아이스하키일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팬들의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큰 부와 명예를 차지하게 되지요.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중에서 ‘웨인 그레츠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999년 은퇴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아이스하키의 모든 역사를 바꿔 놓았다고 합니다. 정규 리그에서 894골을 넣어 최다 득점을 올렸고, 1963개의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9번이나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니 역사를 바꿔 놓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아마 이러한 기록을 남길 사람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평까지 받을 정도였지요.

이러한 그에게 한 스포츠 기자가 묻습니다.

“훌륭한 선수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는 퍽(구기 종목으로 친다면 ‘공’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다음 순간 퍽이 튈 곳으로 갑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곧 퍽이 위치할 곳으로 가는 것. 이런 간발의 차이가 그를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먼저 움직이는 것. 그것이 훌륭한 선수로 그리고 최고의 선수로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조금만 앞을 내다보면 더 좋은 삶, 더 풍요로운 삶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 당장의 일만에 얽매이다 보니 항상 힘들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현재에 충실한 모습은 어쩌면 집착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따라서 조금만 더 앞을 바라보고, 조금만 더 노력하는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써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즉, 수난과 고통을 당하신 뒤에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올 고통과 죽음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아셨고,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지위를 통해서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수난과 죽음에만 머무르시지 않습니다. 바로 그 뒤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신다는 것이지요.

반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 뒤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 당장 안식일 법을 어기는 예수님, 자신들과 의견 충돌을 하는 예수님,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예수님을 지금 당장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만을 생각하지요.

바둑을 두시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몇 수 뒤를 바라보아야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라고……. 주님을 잘 따르는 분 역시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내게 찾아온 현상만을 가지고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다가올 주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주님을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했으면 합니다. 몇 수 뒤를 바라보면서....


일이 잘못되었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의자를 놓는 마음으로...

낙엽 지는 숲 속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누가 놓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잠시 쉬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만 산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의자를 놓아두면 다른 사람이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노력으로 이 세상에 그만큼의 기쁨을 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좋은 생각의 힘이 사람들을 부드럽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한번 손을 내밀 줄 아는 여유로,
스스럼 없는 작은 손길로,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나 하나는 아주 작지만,
그렇게 펴져 나가는 작은 기쁨은 세상을 가득 채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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