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16)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2005. 3. 16. 오전 9: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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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16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엘 3,14-20.91-92.95
그 무렵 느부갓네살 왕이 물었다.“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너희는 내가 세운 금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고 내가 위하는 신을 섬기지 않았다니, 그게 사실이냐? 이제라 도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소 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는 대로 곧 엎드려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절할 마음이 없느냐? 절하지 않으면 활활 타는 화덕 속에 던질 터인 데, 그래도 좋으냐?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 줄 신이 과연 있겠느냐?”사드락과 메삭 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대답했다. “저희는 임금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 대답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주실 힘이 있으시면 임금님께 서 소신들을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으셔도 저희를 거기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을 섬기거나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듣고는 금방 안색이 달라 지며 노기에 차서 화덕의 불을 여느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지피도록 하고, 군인들 가 운데서도 힘센 장정들을 뽑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으 라고 명하였다.
91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측근자에게 물 었다. “꽁꽁 묶어서 화덕에 집어넣은 것이 세 명 아니었더냐?” 그들이 대답했다. “임금 님, 그렇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이 아무 탈 없이 화덕 속에서 거닐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저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닮았구나.” 하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이야말로 찬양받으실 분이구나.” 하며 느부갓네살은 외쳤다.
“저들의 하느님께서,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목숨 걸고 당신만을 믿고 저희의 신 아닌 다른 신 앞에서는 절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 신하들을 천사를 보내시어 구해 내셨구나.”


복음 요한 8,31-41
그때에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따졌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노예이다. 노예는 자기가 있는 집에서 끝내 살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에게 자유를 준다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의 후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너희에게 내 말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의 아비가 일러 준 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하며 예수께 대들었다. 예수께서 '만일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대로 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전하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의 아비가 한 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우리는 사생아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하느님 한 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 와 있으니 만일 하느님께서 너희의 아버지시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보내셔서 왔다.





1983년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세 살 된 소년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크레이븐. 이 소년은 모범생이었으며 더군다나 아무리 따져봐도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소년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악마의 저주를 받아 가족들이 일찍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어머니 곁에서 죽는 편이 낫다”

이를 통해 소년이 다른 유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자살의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악의에 찬 헛소문’인 것입니다.

사실 소년이 들은 일찍 죽는다는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이 가정에 적개심을 품은 한 노인이 퍼뜨린 유언비어에 불가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험담으로 인해서 소년은 충격을 받았고,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있지요.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퍼뜨린 자신과 험담의 주인공과 험담을 들은 사람. 이렇게 셋 모두가 피해를 보고 만다.’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살인은 한 사람에 대한 문제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 뿐이겠습니까? 어쩌면 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행복의 길을 말씀해주셨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당신 곁에 머물면서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 세상 안에서 열심히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바쁘고 힘든 이 세상 안에서도 여유 있게 행복의 삶을 간직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험담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한 명의 큰 죄인으로 만들어 십자가상에서 죽게끔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말들을 믿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산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을 향해서 뺨을 치고 돌을 던지고 침을 뱉는 큰 죄악을 저지르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커다란 걸림돌 위에 서도록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종교 지도자 본인들도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패스트푸드점에서 손님이 커피를 샀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뻔뻔한 손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님은 패스트푸드점을 고소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손님은 승소를 했습니다. 그 승소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 “손님, 커피가 뜨거우니 주의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손님이 승소를 할 수가 있었답니다. 즉, 이 말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패스트푸드점에서 잘못했다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 모두가 잘못인 것입니다. 대신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말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바로 나를 살리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의 말만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입 조심 합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한 미술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미술 도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서 긴 여행을 시작하였다. 여행길에 오른 미술가는 먼저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 종교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믿음'이라고 하였고, 어느 여인은 '사랑'이라고 하였고, 또 전쟁에서 막 돌아오던 군인은 '평화'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믿음과 사랑과 평화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리려면 무엇을 그려야 할까?

미술가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 하였으나, 좀처럼 그 대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져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고 차를 탈 수도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걸으며 그 대상을 찾고자 하였으나, 몸도 마음도 지치고 그림도 한장 그리지 못했다.

미술가는 집 생각이 났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푹 쉬자!'

미술가는 집으로 향했고, 어두워질 무렵 집에 도착하였다.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 일제히 "아빠다" 하고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문을 열어주었다. 오랜만에 아빠의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껴앉고 얼굴을 부비고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마도 저녁식사 시간인지 식탁 위에는 밥과 반찬이 차려져 있었고 그 미술가의 아내는 "이제 오세요? 시장하시죠? 어서 식탁으로 가서 앉으세요." 하고 반가운 미소로 남편인 미술가를 맞이하였다. 미술가는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나의 가정,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 바로 이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구나."

미술가는 그의 가족들을 그린 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멀리있는 게 아니라 내곁에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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