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13) - 사순 제5주일 가해

2005. 3. 13. 오전 8: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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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13일 사순 제5주일 가해

제1독서 에제키엘 37,12ᄂ-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내가 이렇게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 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주님인 내가 한 번 선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주 하느님이 하는 말이다.


제2독서 로마서 8,8-11
형제 여러분,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


복음 요한 11,1-45
그때에 <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사는 베다니아 동네에 라자로라는 병자가 있었다. 앓고 있는 라자로는 마리아의 오빠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린 적이 있는 여자였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하고 전했다. 예수께서는 그 전갈을 받으시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더 머무르시다가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제자들에게 '유다로 돌아가자.'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선생님, 얼마 전만 해도 유다인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그곳으로 다시 가시겠습니까?'하고 걱정하자 예수께서는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낮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하시며 이어서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 라자로가 잠이 들었다면 곧 살아나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라자로가 죽었다는 뜻이었는데 제자들은 그저 잠을 자고 있다는 말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이제 그 일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내가 거기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곳으로 가자.'그때에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가 자기 동료인 딴 제자들에게 '우리도 함께 가서 그와 생사를 같이합시다.'하고 말하였다.>1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베다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 리밖에 안 되는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타는 마중을 나갔다. 그동안 마리아는 집 안에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남기고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귓속말로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하고 일러 주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갔다.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마중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던 것이다.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해 주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곡하러 무덤에 나가는 줄 알고 뒤따라 나갔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찾아가 뵙고 그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말하였다.>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하고 말하였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돌을 치워라.'하시자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 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하고 큰 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더러운 물로 가득 차 있는 물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통을 유심히 보고 있었던 어떤 한 아이가 갑자기 그곳에 물 컵으로 깨끗한 물을 붓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말렸지요. 쓸모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해서 언제 그 물이 깨끗해지겠느냐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도 그 아이는 전혀 실망하는 기색 없이 계속해서 물 컵으로 깨끗한 물을 붓습니다. 물론 그 물통은 여전히 더러운 물로 가득 차 있었지요.

몇 시간 째 이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깨끗한 물을 물 컵으로 날랐습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물통을 바라보자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더러웠던 물이 이제 맑고 깨끗한 물로 가득 찬 물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 할지라도, 깨끗한 물을 계속 넣으면 이렇게 바뀔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지겹다고 그리고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더러운 물은 계속해서 더러운 모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들의 죄 많은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정말로 깨끗해질 것 같지 않은 우리들의 죄. 맑고 투명한 마음이 아니라, 더럽고 흐리멍텅한 우리 마음의 모습.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모습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보다 더 깨끗해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사랑의 생수를 쏟아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 일찍 포기합니다.

“저것은 도저히 안 되는 일이야.”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

“저 사람은 도저히 개선될 수 없어.”

바로 우리들이 포기하면서 던지는 말들입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는 우리들과 달리 끝까지 우리들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명확하게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선 라자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지요. 성서에서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다는 것은 살아날 희망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체가 이미 썩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제 라자로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이 상태에서 마르타와 마리아 모두 라자로가 아주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상태, 모두가 포기한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써 다시 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모두가 포기한 상태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면서 일을 포기하고, ‘이 세상 삶이 너무나 힘들다’면서 나를 포기하고, 또한 ‘저 사람은 바뀌어 질 가능성이 없다’면서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했던 이웃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이렇게 쉽게 포기를 하는지요? 바로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그분께서 계시다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오늘도 큰 용기를 가지고서 기쁘게 생활했으면 합니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

우리는 모두가
나름대로의 능력과 갖가지 꿈을 안고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 능력을 찾아내고 이용하면서 우리의 꿈을 채워갑니다.
그것을 인생의 도전이라고 하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아주 다른 여건 속에서 이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효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갈망하는 그 꿈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습니다.
그 꿈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줄 수도 있으며 또한
가장 큰 괴로움이 될 수도 있으니,
바로 그 누군가와 더불어 삶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간절한 꿈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고 싶을 따름입니다.

위의 글은 예반의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의 일부분입니다.
아무리 삶자체를 누군가가 대신 살아줄수 없다고 하지만
오로지 혼자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꽃도 피우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을 아는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한두 사람을 알더래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 좋은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합니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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