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인접한 시골마을에서 농부의 새째 아들로 부모님 형님두분, 누님한분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 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불교에 관심을 두면서 평범한 농부님 인품으로 자녀교육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담배를 즐겨 태우시던 부친께서는 70세 별세 하였습니다.
새벽 5시면 어머님은 아침 잠 이겨 내시고 시장에 가셔서 채소장사 하시면서 자녀들 에게
사랑의 열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위암말기로 52세의 생을 마감 하였습니다. 생애가 나가던 아침 모친께서 마지막으로 신앙을 쏟아 던 개신교장로회 목사님과
집사님 몇 분의 장례미사로 영혼을 주님께 보냈습니다.
그 후 전 장로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일찍 해어진 어머님의 영혼을 위해서 경건하게 기도 드렸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산업전선에서 생산직 공장에 종사를 시작하여 배달업무 운전 직장생활 그러면서 한편으로 대학진학 공부도 준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일찍 성공 하고자 하는 의욕이 많아서 대학공부는 포기하고 직장에서 열심히 종사 하면서, 조금씩 화훼 ,조경 계통으로 업종을 바꾸어 실전을 배웠습니다.
3년 전 일요일이면 인근 학교에서 조기축구 오가며 성당을 보면서 어느 날 성당을 찾아가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의욕에 교리공부를 받으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여호와 진으로 착각 하였던 저는 천주교의 정교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 하였습니다.
처음에 미사 참석 하면서 여러 불편이 있었지만 3개월이 흘렀을 때에 어느 형제님의 권유로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시작 하였습니다.
미사를 드리면서 교우들의 인상이 깊어서 레지오 권유 받을시 바로 입단 약속 후 흥미를 얻었습니다. 기도와 예식 절차 부분을 단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적극적 도와 주셔서 활동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멀리 백제 애덕의집(장애인교우)란 곧 에서 봉사의 시초로 참 행복감 느끼면서 몇 번의 눈시울이 젖어드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적은 정성도 타인에게 행복을 나눠 준다는 교훈을 얻고 하느님께서 주신 놀라운 기적이 바로 이거구나. 깨달았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다니던 회사에서 퇴출 후 고향에서 꽃집을 경영을 시작 하면서 역경은 다시 시작 하였습니다. 2년의 단기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에서 시작 하였지만 혼자 하는 사업인지 매듭은 점점 더 묶여졌지만 처음에 봉사의 뜻은 계속 하고자 하는 의욕은 있는지라 71년 갑장들이 하고 있었던 작은예수회 소망의집에서 급식봉사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운동을 즐겨하는 저는 가톨릭마라톤동호회에서 교우들과 같이 운동 하면서 봉사의 뜻을 모으신 몇 분의 형제, 자매님과 강동성심병원에서 환자 목욕봉사로 인하여 친교를 나누며 서로의 모자라는 미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비록 내 자신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조금의 여유를 가져서 사랑의 봉사를 베풀어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많은 행복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길 성부.성자.성령께 갈망합니다.
2006년8월24일
은총의 샘 최 석수 요셉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