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회합 시간에 성서공부는 합당한가?

2005. 10. 28. 오후 4:14:32

글자

올려주신 질의에 대해서는 그전에도 본 게시판에서 다루었던 문제로서 민감한 사안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 모두가 가톨릭 신자들이므로 언제 어디서든 성서를 읽고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레지오 주회합 시간에서도 가능한 일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서울 세나뚜스에서는 이러한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단원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주회합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쁘레시디움 주회합 시간에서만은 성서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교본 공부가 잘 되어 있는 쁘레시디움에서는 훈화를 성서에서도 골라서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본 공부 시간이나 기타 시간에 성서 공부를 하는 문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성서를 봉독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성서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식으로 성서 공부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규정된 시간 내에 순서적으로 주회합을 마쳐야 하는 당위성 때문에 그러한 성서 공부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2002. 2월에 전임 서울 세나뚜스 단장님께서 본 게시판에 피력해 주신 의견을 본 질문에 대한 추가적인 답변으로 아래에 함께 올려 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5. 10. 21.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류 길성 당시 단장님의 의견>


얼핏 듣기에, 레지오에서 단원들이 성서 공부하겠다는데 그것 못하게 말린다고 하면, 삼척동자가 들어도 ’웃을 일’(?)입니다. 그런데 세나뚜스가 그 ’웃을 일’ 에 대하여, 레지오의 ’영성과 규율’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문제가 이 게시판을 통하여  확실히 정립 되지 않았을 경우에 빚어질지도 모르는 혼선을 염려하여 드리는 답변이오니, 이 글을 읽으시는 동료들과 특히 한 형제님께서는 폭 넓게 받아들여 주시고, 특히 자신의 쁘레시디움에서도 이 문제를 상의하여 주시고, 누구보다도 먼저 영신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나서야 할 레지오의 일선 조직인 쁘레시디움과 행동 단원으로서, ’기타 시간의 성서 읽기’에 대한 세나뚜스의 지침을 너그럽게 수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미 여러번 이 게시판에서 반복 설명된 바 있는, 바오로 성인이 세우신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의 지체론 (肢體論)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 역시 기본적으로 그 해답을 지체론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무릇 신앙 공동체 안에는 신자들에게 선익을 제공하는 수많은 여러 단체들이 있으며, 각 단체는 각기의 독특한 방법과 공부와 영성으로 신자들을 이끌어 줍니다.  성서 공부는 신앙인으로서는 필수이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성서 공부의 중요성을 수없이 반복 강조하고 있고, 교회 공동체 내에는 실제로 성서를 가르치는 기관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단순히 성서를 봉독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성서 ’공부’라는 것은 많이 안다고 아무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교회가 인정하는 일정 단계의 성서 공부를 마친 ’자격이 있는 봉사자’가 인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봉사자는 자신의 사적인 견해나 주해가 아니라 오직 자신이 배운대로, 배움을 받은 범위 안에서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쁘레시디움 주회합 시간에 5-6분 동안 성서에 대해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씀입니까 ?  성서 봉사자가 그 쁘레시디움의 단원이신가요?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성서 봉사자가 없는 경우가 될  것 입니다.


둘째, 아무리 달리 이야기하려해도, 신앙인이 성서를 모르고서는 기본이 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성서공부는 가장 기본이고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성서를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공부를 1-1/2 시간 안에 끝이 나야 할 쁘레시디움 주회합 시간에서, 그것도 고작 일주일에 5분 정도 성서를 ’읽는 것’만으로 성서공부하고 있다고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만에 하나라도 단원들에게 일종의 ’그릇된 만족감’을 조장하여, 오히려 성실하게 성서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노력을 약화시키고나 있지 않은지요?   


과연 그렇게 하고 계신 쁘레시디움 단장님들은 그 5분의 성서 봉독이 단장 스스로 레지오 교본을 성실하게 공부하여 얻은 바를 주회합 시간을 통하여 단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기우린 ’노력의 5분’보다 단원들에게 더 큰 영성적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계신지요?  아니면, 1-1/2시간의 쁘레시디움 주회합 시간은 문자 그대로 레지오의 시간이므로, 우선 레지오 안에서 레지오적(的)으로 진행하는 것이 - 레지오 영성 안에서 ’오소서, 성령님’ 하는 우리들의 초대로 - 교본의 표현대로 - 우리와 함께 주회합 자리에 앉아 계신 성령께서 쁘레시디움 단장에게 내리신 단장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초자연적인 은총 세계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은총을 전달할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큼만 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르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단장의 쁘레시디움에 속해 있는 단원들은 그 단장의 영성을 고스란히 나누어 갖게 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단장의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나날이 레지오 정신면에서 약화되어 감은 곧 눈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여러가지 단원들의 관심사나 행사등에 대하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회합의 기타 시간’에 단순히 성서를 봉독한 것만으로 ’성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은 분명 옳은 레지오 영성이 아닙니다.


셋째, 가톨릭 신앙 안에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들이 성서 공부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지오의 1-1/2 시간 주회합 시간 안에 가톨릭의 좋은 모든 것들을, 단순히 그것이 좋기 때문에, 몽땅 다 집어 넣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레지오 마리애에 허락하신 카리스마에 따른다면,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 가장 바르게 기여하는 길은 레지오가 레지오다워지고, 빈첸시오회는 빈첸시오회 다워져야 하고, 울뜨레아는 울뜨레아 다워져야 하고, ............등등 입니다. 


넷째, 단원들이 주간 활동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그런 쁘레시디움은 이미 레지오의 참된 영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활동이 없는 레지오는 ’죽은 레지오’ 입니다.  ’할 필요가 없는 레지오’ 입니다.  그런데 그 단원들의 활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쁘레시디움 단장이 배당한 활동이라야 합니다.  그러니, 활동이 없는 쁘레시디움이 ’죽은 레지오’ 로 변질되는 그 근본 원인은 대개는 쁘레시디움 단장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일 쁘레시디움 주회합이 참으로 레지오의 영성이 요구하는대로 바르게 진행된다면, 사실상 정해진 진행 이외에 다른 것을 끼어 넣을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결코 한 형제님의 쁘레시디움이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아니라, 한국 레지오의 일반적인 흐름에서 볼 때, 이러한 추측이 대개 틀리지 않는다는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가 레지오라는 공동체에 몸 담고 있는 한, 함께 나누어야 할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진심으로 바라건데는, 주회합중의 기타 시간에 성서 공부를 하는 쁘레시디움의 단장님과 단원들이 매 주회합마다 2시간의 주간 활동 의무에 대한 배당과 활동 의무 이행이라는 레지오의 가장 중요한 기본을 충실히 수행하는 노력도 함께 보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 외에도 주회합 시간에 다른 것을 넣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러가지 더 있습니다만, 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쁘레시디움 주회합의 영적 독서로서 성서를 봉독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마저도, 한시적으로 어떤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교본을 완전히 제쳐 놓고 성서만으로 영적 독서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권장할 수 없습니다.


폭 넓게 받아 주시기 바라며, 이 게시판의 활성화를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시기 기대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002. 2. 21.

서울 세나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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