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 하지만 분노의 씨앗은 이미 그런 우리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다.

2005. 6. 17. 오전 6:39:08

글자

우리는 흔히 자신은 평화 가운데 고요히 있는데 누군가가 자꾸 집적거리며 신경을 건드리는 바람에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고 말한다. 자신은 본래 분노할 일이 없는 더없이 평화로운 인간인데, 누군가가 기분을 상하게 하므로 뜻하지 않게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분노하는 원인은 전적으로 남에게 있다.

하지만 분노의 씨앗은 이미 그런 우리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었다. 남의 말이 평온하고 잔잔한 내 마음에 닿으면서 분노의 물결을 일으킨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분노의 격정이 남의 불쾌한 말 한마디에 곪은 고름처럼 터져 나온 것이다. 그것은 같은 말인데도 누가 하는 말인가에 따라 폭발하기도 하고 애교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인간의 얄팍한 감정이 증명한다.

천사로부터 잉태의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서로 기쁨의 인사를 나눈다. 엘리사벳은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석녀였고, 마리아 또한 처녀로서 아이를 가진 몸인지라 서로 축복하고 기쁨을 나눌 처지가 못 되었지만, 그들은 남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에 분노하지 않고 기쁨을 나누고 축복을 빌어준다. 서로 기뻐하고 축복하는 것이 그들의 본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들만의 마음이겠는가? 그런 마음이 드러나도록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남의 불쾌한 말 한마디에 내 존재가 흔들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남을 나에게 분노의 격정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남이 내게 던지는 불쾌한 말 한마디를 나를 정화시키는 기회로 삼아라. 마리아처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부르는 자만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탄생시키는 기쁨의 노래를.

마리아에게서 나신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큰 소리로 시편(22장)의 첫 구절을 읊으셨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이어지는 시편은 우리를 절망으로 이끈다. 분노하게 한다.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 밤새도록 외쳐도 무르는 체하십니까? ...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시편의 전부가 아니다. 이 시편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 배불리 먹고 야훼를 찾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리니..... 그 이름을 세세대래로 전하리라. 주께서 건져 주신 이 모든 일들을 오고 오는 세대에 일러주리라.”

그분의 마음씨가 느껴오지 않는가? 우리를 정화시켜주는 마음, 구원으로 이끄는 마음. 구원의 샘, 찬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

 

 

●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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