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마태 16,13-23
정확히 어느 때 사람인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늘 기억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아몬 헤네시. 그는 미국에 살았던 사람인데,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을 엄하게 대한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아몬 헤네시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다녔다고 한다.
전쟁을 일삼는 정부에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에게 세금을 받아내려고 세금징수원은 악착같이 찾아다니고,
아몬 헤네시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임금을 받는 떠돌이 노동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래도 세금징수원이 찾아내면 또 떠난다.
아몬 헤네시는 세상의 변화는 한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용기와 유머의 부족이라고 했다.
아몬 헤네시에게 예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아마도
‘당신은 불의를 참지 않으시고,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용기있는 분’이라고 응답하지 않을까 싶다.
로메로나 지학순 주교 같은 분에게 예수는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시는 분’으로 고백될 것 같다.
나에게 예수님은 ‘사랑이 넘쳐흐르시는 분, 그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너무 비장하게 하지 말자는 얘기를 가끔 한다.
너무 비장하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몰아세우게 된다.
사람을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어린아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줌 마렵다고 한다.
운전하다 말고 길에다 차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오줌을 누이는 일은 사실 귀찮다.
‘아까 휴게소에서 누면 좋았잖아. 그리고 오줌을 오래 참으면 안 좋은데 왜 꼭 급해야 얘기를 하니’ 하고
핀잔을 줄 수도 있지만 아직 그렇게 해본 적은 없다.
내가 “오줌이 많이 마려웠구나. 어떻게 지금까지 참을 수 있었니?” 하면 아이의 입이 귀에 걸린다.
길에서 오줌을 누는 똑같은 행동을 보고 문제를 얘기할 수도 있고, 강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보는 관점이 중요한 셈이다.
만약 아이들에게 내가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하고 물을 때
주저없이 ‘응, 친절한 사람’ 하고 대답한다면 참 고맙겠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본다면 아이는 내게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느님이 오늘 내게 물으신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