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 김웅태 신부님

2006. 12. 2. 오전 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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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3주 목요일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오늘 복음[루가 19:41-44]은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해 장차 당할 재앙을 내다보시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시는 탄식의 말씀을 들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토록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은혜를 내리셨지만 그 사정을 외면하는 결과가 어떠한 비극으로 끝나는 가가 드러나 있다.(예루살렘의 뜻 : 평화의 도시, 유일신을 믿는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는 도시, 유대교, 그리스도교(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이슬람교 등, 유대인, 아랍민족의 공존 등).

이것은 또한, 예수께서 지상에 대한 엄격한 심판자로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의 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여러 번 몸소 방문하시고 사람들에게 호소하시지 않았다면,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눈물을 흘리시면서 까지 장차 당할 멸망을 슬퍼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 교훈이 있다.

1)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벌주기를 더디 하시고 오랫동안 참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  예루살렘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하느님이 보낸 자들을 돌로 쳐죽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마침내 자기 아들까지 보내주시어,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일러주었지만, 이를 거절하는 예루살렘의 죄를 마음 아파하시며 우시기까지 하시는 모습을 볼 때, 오늘의 우리는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외면하는 우리를 향해서도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2) 예수님의 사랑의 호소를 볼 수 있다 :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은 강제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호소를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호소를 받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엄숙한 책임으로 그의 종말에 가서 나타나고 있다면 주님의 호소에 내 마음의 문을 얼마나 열어놓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3) 복음의 이야기는 인간 스스로 하느님을 알고도 외면하는 죄의 고의성을 드러내고 있다 : 사람의 마음의 문은 외부에서 열 수 있는 손잡이가 없음으로 안에서 열지 않으면 안돼는 것인데 사람들은 말씀과 기적들을 통해서 간곡히 호소하시는 예수님을 마음의 문을 닫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4) 결국 그리스도를 고의로 배척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그때부터 40년이 지난 기원 후 70년(로마의 티투스장군에 의해)에 말씀대로 폐허가 되는 재앙을 당하는 역사적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호소를 거절해서는 안된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강론자료집 / 정리: 김웅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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