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해 연중 제 33 주간 수요일. 2006. 11. 22. 토평동. 묵시 4, 1-11. 루카 19, 11-28. 사람들은 어제 예수께서 자캐오에게 “오늘” 구원을 받았다는 말과 관련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늘의 비유를 통해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나는 귀족이 당신을 의미함을 알려주시며, 당신이 왕의 권한을 가지신 분임을 알려주십니다. 당시에는 왕이 될 사람은 왕권을 얻기 위해 로마에 갔습니다. 그것에 비추어 예수께서 지상의 왕은 아니지만, 왕위를 얻는 것이 확실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방해를 하지만, 당신께서는 왕위를 받아 오실 것이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그리스도 왕국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당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먼 길을 떠나는 것에 비유하시죠. 대신 우리는 먼 길을 다녀오시는 분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귀족이 자신의 종들에게 한 미나씩 즉 1000만 원정도 되는 돈을 맡기고 갑니다. 마태오복음에서 한 달란트씩 주었다는 것에 비하면 작은 돈이지만, 귀족은 그들에게서 엄청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주인의 뜻에 순종하면서 충실한 삶을 사는지를 보려는 것입니다. 처음의 두 종은 열 배, 다섯 배로 불립니다. 대단한 수완입니다. 그러나 고대세계에서 하는 장사는 위험부담이 큰 만큼 이문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 종들은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장사를 함으로써 큰 이문을 얻었고,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유산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은 주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냉혹하고, 가져다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어 가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비록 그가 잘못 알고 있었다 해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더 열심히 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고,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그를 꾸짖습니다. 그는 가진 것마저 빼앗깁니다. 그가 극단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삶을 살았어야 합니다. 이 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과 함께 살고 싶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들을 바라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사는 게 쉽습니까?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명이 있기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귀족이 종에게 미나를 쥐어주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계명을 쥐어주셨습니다. 당신의 힘과 용기를 쥐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달란트를 쥐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지금의 삶을 훌륭하게 그러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실패할 위험이 크다고 해서 아예 행하지도 않는 모습, 내가 살아갈 때에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아예 하지도 않는 모습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될 모습의 전형이죠. 종은 귀족의 소유입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하느님나라에 살기 위해 최소한의 투자라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래도 이 종들은 백성들보다는 낫습니다. 귀족이 왕이 되었을 때 이 백성들은 누구라도 그의 백성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누구라도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께서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방해했기에 그들은 처형을 당합니다. 아예 하늘나라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합니다. 마지막 종이 패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들에 비하면 낫습니다. 그래도 종은 종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쥐고 있었기에 그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앙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을 욕하거나 주님 곁에 서지 않는 사람, 그들은 쫓겨나고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바로 우리는 희망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품고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고, 부지런히 벌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천국의 땅, 고을입니다. |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 오전 12:58:07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