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침묵의 밀어[류해욱신부님]

2006. 12. 2. 오전 12:51:43

글자

 침묵의 밀어


  독서로 어제는 요한의 둘째 편지를, 오늘은 셋째 편지를 들었습니다. 둘째 편지에서는 ‘선택받은 부인’으로 되어 있지만 공동체를 인격화한 표현으로 요한의 제자로 생각되는 저자인  원로가 어느 공동체에게 보낸 당부와 격려의 편지입니다. 셋째 편지는 가이오스라는 구체적인 이름이 수신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원로가 어느 공동체에 션교사 몇 명을 보냈는데 그 공동체의 책임자인 디오드레페의 반대에 부딪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시 선교사를 보내면서 가이오스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입니다.

  두 편지에서 모두 지금 공동체와 함께 있지 못하지만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원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거나 말로 격려를 해 줄 수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역시 함께 있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번역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축복]에서 함께 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 두 토막을 나눕니다.


  뮤리엘은 12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다. 이제는 증상이 심각해져 기억력이 완전히 없어졌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치매노인을 위한 양로원에 있는 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끝없이 양로원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그 같은 반복적인 행동은 치매말기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다. 마치 잃어버린 무엇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양로원의 의료진들은 그녀의 불안을 없애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깊이 잠 잘 때를 제외하면 늘 불안한 상태로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을 반복해서 얼굴은 점점 더 수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정원으로 통하는 문 옆에 걸려 있는 거울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온 몸을 다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큰 거울이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얼굴은 아주 낯익은데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친구를 만난 표정이었다.

  뮤리엘은 치매가 악화되면서 최근 몇 달 동안은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거울 앞에서 거울 속의 여자와 자기만의 밀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날마다 그녀는 몇 시간이고 거울 속의 여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간호사들은 그녀의 새로운 행동을 다행으로 여겼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그녀를 돌보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이제 거울 앞에서 몇 시간이고 가만히 있으니 훨씬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담당 의사는 그녀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매일 회진을 돌때 그녀와 함께 거울 앞에서 가만히 있었다. 때로는 그녀처럼 그도 거울 속의 여인에게 아주 친절하고 존경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느 날 거울 속의 여인과 긴 대화를 나누는 중에 뮤리엘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의사는 자기 환자를 치매에서 벗어나 할 수는 없었지만 함께 있어 줌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느끼게 해 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정신과 의사인 친구가 들려준 것이다. 그는 1980년대에 뉴욕에서 열린 융 분석가들을 위한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학회는 칼 융의 마지막 제자 중의 한 사람이자 탁월한 융 꿈 분석가인 마리 루이즈 폰 프란츠에 관한 여러 편의 영화를 보고 패널들이 그 영화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두 개의 융 꿈 분석 연구센터의 소장인 저명한 분석가와 융의 친 손자가 패널로 나왔다. 패널들은 영화에 대한 토론뿐만 아니라 청중이 종이에 적어 낸 질문지에 대해서도 대답을 했다.

  질문지에 적힌 내용 중에는 나치의 폭행에 의해 인간성이 완전히 짓밟히는 꿈을 계속 꾸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패널 중의 한 사람이 그 질문 내용을 청중들이 알 수 있게 큰 소리로 읽었다. 친구 의사는 그 내용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 꿈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시도했다. 고문의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패널들의 반응이 과연 자기의 분석과 일치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패널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융의 손자가 다른 패널에 의해 낭독된 그 꿈의 내용을 듣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청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 잠시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꿈에 응답하기 위해서 잠시 침묵하며 서 있겠습니다.”

  참석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몇 분 동안 서 있었다. 친구는 이어질 토론을 기대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토론은 없었고 패널들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친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학회에서 돌아와 꿈 분석가인 자신의 스승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말했다.

  “아, 루이스, 그건 말이야. 세상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있지. 상처가 너무 커서 어떤 말이나 설명도 아무 소용이 없고 치유가 되지 않는 그런 고통이지. 그런 고통을 맞게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거기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전부이지.”


  그런 고통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주는 의지와 용기를 지닐 때 우리는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나누어 주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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