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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일 강론
(마르 10,46-52)
우리는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의 치유에 관한 말씀에서 3가지 점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을 보게 됩니다. 눈먼 거지는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치자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으며 질책합니다(마르 10,48).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용기를 내어 일어나라고 격려해 줍니다(마르 10,49). 세상에는 벗어 버리기 힘든 고통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을까요? 혹시 외면하거나 손가락질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삶의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둘째는 눈먼 거지의 태도입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 10,51)라는 말은 이 눈먼 거지가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눈먼 거지는 처음엔 보였으나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경이 되었고 이제 거지와 같은 생활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겉옷을 던져 버리고 벌떡 일어나 주님을 향합니다(마르 10,50). 우리도 혹시 신앙생활 속에서 주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눈먼 상태에 있지는 않는지 삶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면적인 겉치레를 치워 버리고 과거의 옳지 못한 습관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으로 주님을 향해 가야하지 않을까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눈먼 거지의 애절한 청. 우리도 주님의 발목을 붙들고 매달여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완전한 신앙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제 눈먼 거지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체험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마르 10,51)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의 울음을 위로로 바꾸시고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곧은길로 이끄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예레 31,9).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체험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 보입니다. 눈먼 거지가 눈을 떴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삶이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웠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갑니다. 그 십자가는 짊어지기에 너무 버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눈먼 거지처럼,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버거운 짐은 가벼워지고 그것을 마음으로 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노라”(시편 126).
2006년 10월 29일
가톨릭대학 홍승모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