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대 마르코 신부-
오늘 성목요일 저녁에 거행되는 주님의 최후만찬미사로서 교회는 예수부활대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파스카 성삼일(Triduum Paschalis)'에 들어간다. 파스카 성삼일은 부활대축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것은 수난과 죽음 없이는 부활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파스카 성삼일과 부활대축일'을 일년 전례력을 통틀어 기념하는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구원의 신비들 중에서 가장 거룩하고 성대하고 뜻깊은 축제로 거행한다. 오늘 주님 만찬 저녁미사에서 특이한 사항은 요한복음의 모범을 따라 세족례를 행하는 것과 영성체후 기도가 끝나고 성체를 옮겨 따로 모시고, 제단을 벗기고 십자가를 가리는 것이다.
오늘 미사에서 봉독되는 말씀들을 보자. 교회는 주님만찬미사에서 전통적으로 제1독서로는 과월절과 무교절 축제의 기원을 밝히는 출애굽기(출애 12,1-8.11-14)를 봉독하고, 제2독서로는 성체성사 제정기사를 담은 고린토 1서(1고린 11,23-26)를 봉독하고, 복음으로는 예수의 마지막 만찬 중에 세족예식을 담은 요한복음(요한13,1-15)을 봉독한다.
우리는 이미 어제 복음을 통하여 요한복음이 최후의 만찬을 공관복음과는 다른 시점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하였다. 공관복음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무교절 첫날에 준비시켜, 과월절이 시작된 후의 시점에 행하신 것으로 보도하고, 또 성체성사 제정기사를 함께 보도하고 있다.(마태 26,17-29; 마르 14,12-25; 루가 22,7-23)
사도 바울로의 고린토 1서 말씀도 공관복음에 준한다.(1고린 11,23-26) 그러나 요한복음은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요한 13,1) 만찬을 행하신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더욱이 성체성사 제정기사를 빼고 이 자리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례'를 보도하고 있다.(요한 13,4-15) 이렇게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 기술된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최후만찬의 날짜에 대하여는 성서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다.
공관복음사가들의 의도는 분명히 무교절과 과월절 축제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있다. 이들 축제의 의미를 한데 묶어 예수께서 세우시는 신약의 성체성사를 '누룩 없는 빵'과 '어린양의 피'에 연결짓자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무교절과 동시에 시작되는 과월절 첫날 시작 직전에 과월절 만찬을 준비하게 하셨고,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만찬을 하시는 중에 자신의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담아 새로운 계약을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약의 성체성사이며, 십자가 죽음으로 내어놓게 될 자신의 목숨(살과 피)을 담은 구원의 성사이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과월절 만찬 위에 신약의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이다. 이로써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성체성사 제정을 예수님 공생활의 마지막 결론으로 내세운다고 볼 수 있다.
요한복음은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예식을 통하여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13,14-15)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지상명령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예수님 공생활의 결론을 세상과 제자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요한복음은 6장, 빵의 기적과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체성사 제정을 간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둘 다를 얻은 셈이 된다.
약 2000년 전 오늘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마지막 만찬이 우리 앞에 실제로 드러난다. 오늘의 만찬미사는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이 그분의 제자들인 바로 우리들이 함께 나누려는 것이다. 그때와 똑같이 그분은 우리에게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주시며, 그분의 살과 피는 그분의 모든 것,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성체성사로서 인류를 위한 구원의 성사요 사랑의 성사인 것이다.
성사(聖事)의 신비로움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도록 이루어 주셨다는 데서 출발하지만, 그 신비의 본질은 바로 사랑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에게 나의 몸까지 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되어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